그림자를 찾는 시간
내가 여섯 살 쯤이었을까.
가끔 할머니는 방 안에서 울면서 노래를 불렀다.
민요의 슬픈 곡조와 할머니의 울음이 마치 원래 그런 음악처럼 하나가 되어 방안을 가득 채웠고,
그 얇디얇은 소리가 마당 한 구석으로 빠져나가다 멈추었다. 아무리 불러도,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는 듯. 멈췄다 시작하기를 반복했다.
“할머니, 왜 울어?”
나는 묻고 또 물었다.
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둘째 큰아버지가 불쌍하다고 했다.
나는 둘째 큰아버지를 사진으로만 봤다. 할머니 말대로 네 형제 중에서 키가 가장 크고 훤칠했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린 나이에, 나는 슬픔이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눈물과 노래가 한 몸이 되어 방 안을 떠돌았다.
세월이 흘러 할머니를 내쫓았던 넷째 큰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대기업 주식으로 부자가 되었지만, 그 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기와 병, 그리고 자식들의 뒤치다꺼리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리 집도 망했다.
할아버지가 심은 커다란 감나무에서 더는 단감을 따먹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그 뒤로 아들네 집을 전전하며 손주를 돌봤다.
편한 잠 한 번 제대로 못 이루셨다.
결국 할머니는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아빠는 매달 병원비와 수술비를 감당하느라 고단했다.
네 명의 형제 중 마지막으로 남은 막내였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에게 들었다.
“내가 저수지에 빠져 죽을라고 했는데 느 아빠 때문에 도망도 못 갔다.”
할아버지의 폭력과 외도로 힘들어 도망치려 했지만, 갓 돌도 안된 통통한 아빠의 손발을 보니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복스러운 손이 자신의 삶을 붙잡았다고, 그 작은 손 때문에 도망가지 못했다고.
그 말이 오래 남았다.
할머니는 자식 때문에 날지 못했는데, 자식 때문에 상처받고, 자식 때문에 울었다.
할머니는 울면서 노래했고, 아빠는 울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삶은 눈물과 노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삶을 택하든 말이다.
그러니 너무
동동거리지 말자.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버텨보자.
할머니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