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

그림자를 찾는 시간

by 공작



시골집 마당 한쪽에 시암이 있었다.

시암에서 물을 퍼올려 생선을 씻고, 여름엔 직접 몸도 씻었다.

물을 바가지로 퍼부으며, 시멘트 바닥에 세재를 풀어 거품을 만들어 놀다 혼나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시암에서 잘려 나가는 고등어를 보며

'생선이 불쌍하다'며 울고 불고 난리를 쳤다고 할머니가 자주 말씀 하셨다.

그 이야기를 할 때면, 할머니의 표정만 봐도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귀여워했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빠는 늘 귀가가 늦었다. 아빠가 사 온 아이스크림을 먹고 하루의 이야기를 하다

잠이 들었다.

아빠가 오지 않는 날이면, 엄마는 외로워 보였다.

나는 엄마가 무서우면서도 좋았다. 엄마는 원래 참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젊고 예쁘기까지 했다. 세월의 팍팍함으로 나를 밀어내고 미워했지만,

잊을만 하면 나를 때렸지만,

나는 엄마가 그래도 좋았다.


그 시절의 많은 가장들이 그랬듯, 아빠는 집보다는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가끔 사다 주는 음식이나 선물로 존재감을 증명하던 사람이었다.


난 괜찮은 줄 알았다.

문득, 아버지와 제대로 나누지 못한 감정들이

마음속 어딘가에서 썩지 못하고 가라앉아 있는 걸 느낀다.



그래도 우리는

확실히 행복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제대로 아버지와 하지 못한 말들이, 이제야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올라온다.


이제는 내 마음속 오래된 시암의 뚜껑을 열어야 할 때다.


한 번도 꺼내어 다뤄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내 평생을 지켜본 마당의 시암처럼

그 물을 퍼올려,

씻고 말려야 한다.


그게 아버지를 진정으로 떠나보내는 진짜 방법이고,

나를 지키는 법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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