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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Nov 29. 2022

선생님, 이번 달까지만 할게요-2

돌아보면 의미 있는 기억

나는 왜 이런 회사에서 고생하면서 욕을 듣고 있을까 그냥 나가버릴까. 도망가 버릴까. 매일 고민했다. 사교육이라고 시키는 게 오로지 학습지 하나뿐인 알뜰한 엄마들은 거의 과외를 해주기를 바랐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안 들면 따지기 일수였다. 그러다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본질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했다. 본사에서는 4 4 2 법칙이라고 해서, 4분 채점 4분 진도 2분 상담을 한 과목에 10분 안에 모든 것을 끝내라고 했다. 현장은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뛰어다녀야 하는 선생의 부지런한 종종걸음이 있어야 가능한 시간이었다. 철저히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지침이었다. 아무리 학습지지만 회원이 모르는 것을 설명해주면 훌쩍 10분이 지나있었다. 


 그래도 뭔가 있겠지. 본사에서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분이 있으니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이겠지. 시스템이 받쳐주니 나만 잘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못하면 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회원은 유아부터 고등학생.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말이 안 되는 학생 분포였다. 유아면 유아, 초등이면 초등인데 중등도 아니고 더군다나 고등학생이 학습지라니... 끊지 못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해 온 것이 분명했다. 학습지 국영수는 싸니까 초등학생 때부터 부수적으로 고등학교까지 수료했다는 근본 없는 성실함과 꾸준함으로 포장된 그 한 과목을 거절하지 못하고 인수받았다.  고등수학은 자신이 없었지만, 사무실에서 선배들에게 과외까지 받으며 그 집을 지켜냈다.


 퇴근하면 밤 12시 1시까지 교재 공부에 매달렸고, 15분이라는 시간 안에 답지를 보지 않고도 채점이 가능하도록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채점 암호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문제집 위에 표시된 암호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아이들은 절대 알 수 없었다. 몽골어 숫자 알파벳을 첫 문자를 필기체로 적어놓았기 때문에 나는 1초도 안되어 인식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과 부모님은 색연필 자국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 꼭 그렇게 까지 했어야 했냐고 하겠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하루에 30명의 회원을 만나고 학생 어머님과 부족한 과목 상담까지 하려면 해답지를 펼치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채점 시간은 단축되고, 교재 설명에 집중하니 아이의 문제점이 제대로 보였다. 영업은 더 이상, 학부모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이 아닌 아이와 부모님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이 되었다. 퇴회보다 새로 들어오는 회원이 많으면 그것을 순증이라고 하는데, 순증 10을 달성했다. 국장님은 같은 여자인데 변변한 정장 한 벌 없는 내가 불쌍했는지 옷가게에 데리고 가서 옷을 한 벌 사주셨다. 영업의 짜릿함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옷을 받아 입으면서도 어쩐지 기쁨보다는 다음 달에 채워야 할 실적이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국 최우수 성과를 거둬 입사할 때 갔던 연수원에 , 우수사원으로 다시 가게 되었다. 


혼자 매출 1억을 올렸다는 선배의 우수 시상식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리라 마음먹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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