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힘
가끔 여행하는 꿈을 꾼다.
보통 가족과 함께 하는 꿈인데, 이번엔 혼자 여행가는 꿈이었다.
게다가 꿈에서 나는 미혼이었다.
정작 결혼 전에는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고, 그럴만한 환경도 아니었건만
꿈에서 내가 못 가져봤던, 자유를 만끽하다니 이토록 황홀한 경험이 있을까.
자유를 만끽하는 젊은 시절의 내가 부러워질 때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였다.
"집에 빨리 와야지"
나는 자유로운 상태였지만, 더 이상 꿈속에서 기쁘지 않았다.
자꾸 뒤돌아 보게 만드는 마음의 울타리. 엄마.
꿈을 깨고 나서 알았다.
내 안에 아직 남은 과거가 날 부르고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만의 책을 쓰고, 새로운 일을 하며 살아왔는데도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엄마의 기준에 충족하지 못한 딸이라는 벽돌 같은 마음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여행지의 낯선 미래보다 안전한 집으로 향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더 편한 척한 적이 얼마나
많았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가 글을 쓰기 위해선 자기만의 방과 돈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자기만의 방과 돈은, 물질 그 자체의 의미를 뜻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기대에서 멀어지는 것,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단 생각이 든다.
버지니아 울프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타인의 지배를 허락하지 말고, 세상의 목소리가 아닌,
내 안의 목소릴 들어야 한다고 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도 조금씩 배워간다.
약속도 없이 갑자기 카톡을 보내고,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과 수다 떨고 싶고, 내 고민 좀 들어달라는 기대를 품고서.
그럴 때 미안해하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한
선택을 지키는 법.
어쩌다 실패한 날은, 타인의 고민에 과하게 리엑션 하며
내 머릿속은 미로를 헤매고 있다. 그러다가 여지없이
집에 와서 쓰러진다.
여전히 마음이 흔들리지만,
이젠 안다. 꿈속에서 마음껏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현실에서는 내 힘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과거의 엄마가 나를 불러도 나는
계속 걸을 것이다.
"이젠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갈게."
내 망의 문은 열려있다.
밖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