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힘
우리가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면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몽실몽실한 구름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하늘보다 가벼운 뭉게구름이 내무 거운 마음을 알리 없었다. 처음 한국어 강사가 되기 위해 떠나던 날, 기쁨보다는 지난날의 수험 생활이 준 공허함이 먼저 밀려왔다. 후회스러운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수험생활을 미련 없이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나 보다.
한국어 강사로 한국을 떠나던 그 길에 부모님은 전주에서부터 공항까지 동행해 주었다. 낯선 공간에서 허둥대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혼자 가고 싶었다. 부모님은 기어코 공항까지 따라오고야 말았다. 부모님의 존재가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를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26살, 생애 처음으로 그것도 혼자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혼자가 되었다는 실감만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숨을 고르려 애썼다.
그때 입국 신고서가 내 앞에 놓였다. 처음 마주한 낯선 서류였다. 한 글자도 제대로 적지 못한 채 펜 끝만 허공을 맴돌았다. 주변의 낯선 기척이 더 불안하게 다가왔고, 차갑게 얼어붙은 마음은 더 깊이 가라앉았다. 혹여 누군가 내 무지를 눈치챌까 두려워 손끝이 떨렸다.
그 순간,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처음 쓰시는 거죠?”
낯설고 낮은 목소리가 마치 구명줄처럼 들려왔다. 그분은 차분히 설명해 주며 빈칸 채우는 것을 도와주었다,.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나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 밑으로로 명함 한 장이 들어왔다. 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번호를 쓸 일은 없었지만,
그날 그 도움은 낯선 땅에서 절망에 빠져 있던 내 마음에 단비 같았다.
그 후 나는 낯선 나라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능숙한 한국말로 내 마음을 풀어주던 학생,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함께 사주던 친구, 초콜릿 하나를 건네던 동료, 식사를 대접해 주던 외교관님. 그들의 작은 배려는 나의 시간을 지탱해 주었고, 타국 생활을 감사와 기쁨으로 채워 주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은 내가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 깨달음의 씨앗이었다.
우리는 때로 거창한 성취를 통해서만 성장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작 나를 단단하게 하는 것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타인의 한마디였는지도 모른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의 성장은
서로에게 잠시나마 선물이 되는 찰나의 시간에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내어준 작은 배려가, 그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가슴을 따뜻하게 덮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