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의미 있는 기억-나의 첫 직장
제5화
외국에선 한국에 돌아와 학원강사를 전전하다가 우연히 신문광고를 보고 학습지교사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갈 곳 없는 나를 받아준 고마운 곳이다. 어쩌면, 어떤 선생님이건 간에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면에서는 꿈을 이루는데 값진 경험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까지 오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경험이었나를 생각해 보면, 굳이 안 해도 되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사회 초년생들이 갈 곳이 없어서, 학습지교사를 택하는 일은 뜯어말리고 싶다.
힘들지 않은 일이 없겠지만, 일반 회사와는 다른 시스템이 존재했고, 그 시스템으로 많은 선생님들이 버티지 못하고, 그만둔다. 이직률이 아주 높다.
#어리석은 생각
직접 교습소를 운영해 보니, 집집마다 찾아다녀야 하고, 마감일을 맞춰야 하는 학습지 교사보다 훨씬, 수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년 전 공부방 교습소를 위한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다. 내가 이렇게 성공했는데, , 뭐 하러 그거 하고 있어요.
빨리 그만두고 이거 하세요.
라는 전형적이고 뻔한 컨셉이었다. 지금도 손발이 오글거리고 부끄럽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게 부끄러웠다.
얼마나 많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내가 징글징글하다고 생각했던, 그 일로,
돈을 벌고, 자신감을 찾고, 가정경제를 살리고 있는가.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가. 더군다나 탁월한 근성과 영업력으로 높은 자리에 까지 오르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그 일이 생계인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내가 아는 지인은 아이의 학습지 선생님이 600만 원이 찍힌 월급 통장을 보여주며
같이 학습지교사를 하자고 제안받았다고 했다.
직군의 특성상 그 600만 원지 정말 순수한 월급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학습지 회사를 그만둘 땐
세금정산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마지막 월급도 받지 못했지만,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그래도 적은 월급이나마
월급이란 게 있었고,
먹고살 수 있었다.
나에게 첫 직장의 의미 있는 기억은
그저 내가,
실적만 밝히지 않는 한 아이를 이해해주는 선생님이었다는 것
그것만으로 족하다.
-끝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