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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Dec 13. 2022

선생님, 이번 달까지만 할게요.-4

돌아보면 의미 있는 기억

모든 사실을 직시하게 된 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만두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무책임하게 노쇼를 하고 싶진 않았다. 팀원들이 떠않아야 할 고통과 무게를 생각하면 쉽게 내용증명이라는 법의 뒤로 숨기는 어려웠다.

불합리한 처사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부끄럽지만 종교를 이 유로 들었다. 토요일은 교회 행사가 많아 출근할 수 없고, (정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고 하니, 그럼 갈 때까지만 그만두지 말라며 그제야 토요근무도 빼주고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8개월을 질질 끌었다. 그만둔다고 하면, 온갖 협상으로 도망갈 수 없는 구멍을 만들어 그만두지 못하게 했다.

 지금도 여전히 선생님의 퇴사는 자신의 손해로 이어지기에 온갖 방법을 동원해 퇴사를 받아주지 않는 악덕 관리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똑똑한 선생님들은 바로 내용증명을 보내고 깔끔하게 퇴사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엔 상당한 갈등을 겪은 후에야 그만둘 수 있다. 


코이카를 통해 합격소식을 받던 날, 비로소

나는 내 굳은 의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회원 인수인계를 마무리하고 나왔지만 은혜를 모르는 원수에게 복수라도 하듯 지국장은 가차 없는 퇴회를 쳐서 신규 교사에게 넘겨주었고, 

그렇게 나는 회사에서 마지막 월급은 받지 못했다.


인수인계를 하고 나오던 날 

나를 따라 나와 눈물짓던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생각난다. 부모님이 모두 장애인이었고, 집에는 간식을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가끔 미친 듯 흑석골을 뛰어다니다가 배회하는 녀석을 만나면 길거리에서 어묵을 사주곤 했다. 같이 어묵을 먹으며  학습지를 꼭 풀어놓으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녀석은 처음과 달리 제법 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실력도 점점 늘어갔다. 

정이 쌓인 만큼, 이별도 힘들었겠지.


나에겐 유난히도 부모의 삶이 버거운 아이들이 많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학습지를 선택했지만, 그마저 녹록지 않아 회비가 자주 밀렸다. 학교교육을 따라가기엔 힘든 장애를 가진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가 겨우 겨우 한글을 공부해서 더듬 더듬이라도 읽게 되자, 다 선생님 덕분이라며 고맙다던 분이 생각난다. 그만둘 땐, 결혼할 때 꼭 연락하라며, 상품권을 쥐어주셨다.


한글을 너무 힘들게 배웠던, 아이..

내가 그만둔다니 , 나에게 꼭 안겨 물어보았다.


" 새로운 선생님도 , 나 이해해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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