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가 된다는 건, 매번 나를 증명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방대를 나왔지만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일할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전주에서 강사생활을 하다가 서울에서 강사면접을 볼 때였다.
학원에 미리 전화를 하고 방문했지만, 나는 낯선 장소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멋스러운 코트에 중단발의 세련된 머리스타일을 한 중년의 여성이 나타나자 그 여자가 원장임을 직감했다. 웃음기 없는 가벼운 인사 후 어떤 설명도 없 바로 강의실에서 시강이 시작되었다. 미리 이야기한 바가 없었는데
원장이 갑자기 중학교 과학문제집을 펼쳤다.
그 원장은 과학문제집의 아무 페이지나 편 후, 한 문제를 손으로 짚었다.
"이 문제를 한번 학생이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설명해 보세요. 먼저 이 문제에 대한 개념을 판서와 함께 설명하고 , 문제의 답까지도 정확히 도출해야 합니다"
나는 당황했다. 이런 시강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리 고지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불편했다. 나만 방패가 없는 불공평한 링 위의 게임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는 수년간의 주일학교인도, 중고등부 선생님, 각종 교회 행사 MC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다. 따라서 당황스러움을 들키지 않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도 철저히 내 본심을, 겁먹은 내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숨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전주에서 1년 동안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 초등부터 중등 과학 수학까지 공부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문제를 어렵지 않게 풀었고, 시강을 잘 마쳤다.
원장은 처음으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아주 잘하시네요. "
나는 불가능해 보이는 게임에서 승리한 것이다. 그런데
시강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오는데 복도 끝에 어떤 남자가 주춤주춤 서 있었다.
다음 날 나는 그 사람이 원장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 남편이 , 밖에서 선생님 수업을 들었나 봐요.. , , 다른 선생님들도 시강 다 봤는데, 남편이 하는 말이 선생님이 설명을 제일 잘한다고 하네....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어요?"
머리가 쭈뼛서는 느낌을 받았지만 얼떨결에 나는 방문 약속을 잡고 말았다.
또 다른 학원에서 면접을 봤다. 이번엔 수학강사 자리였다.
앞서 면접 봤던 학원은 강남쪽이었고 , 이곳은 강북이었다.
이 학원은 가자마자 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원장은 초등학교 3학년 수학책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 분수 단원 있죠. 이게 4, 5, 6학년 과정 중 어디까지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 연결을 위해 무엇을 중점으로 가르쳐야 하는지 이어서 설명해 보세요.
이번에도 예상 밖이었다.
나는 내가 아는 만큼 최선을 다해 설명을 했다.
나는 시강을 하고 나서 , 내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내가 예상치 못한 면접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학원에서도 같이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나는 고민했다.
두 학원 중 어디를 갈 것인가?
나는 첫 번째 학원에 전화를 걸어서 ,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학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학원에서는 시강을 그렇게 잘 하진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첫 번째 학원에서는 내가 시강을 아주 잘했다.
그리고 두 군데 다 일을 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 두 번째 학원에 왜 붙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내가 두 학원 모두 합격했음에도 첫 번째 학원에 가지 않은 이유는,
그냥 느낌이 그랬다.
내가 너무 앞서 짐작한 것 일진 모르겠지만,
원장 성격이 보통이 아닌 거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처음 보는 문제집을 들이밀며 시강해 보라고 하진 않았겠지. 앞으로의 고생 길이 뻔히 보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미련하게 학벌위주의 세계에 겁도 없이 발을 들인 것이다. 그것도 강남에.
학벌이 좋았다면, 그런 식의 시강 과정을 거쳐야 했을까?
강사는 매번 증명해야 하는 직업이 맞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어떤 사람 앞에서 증명할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강사는 ,
선택이라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선택이라는 매력 때문에 이 일을 놓을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