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의 함정

by 공작


#프랜차이즈 세계에 입성하다.


둘째가 네 살 되던 해, 본격적으로 학원업에 뛰어들었다.

프리랜서 강사로 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할 용기는 아직 부족했다.

수업은 자신 있었지만 운영, 행정, 홍보, 민원까지 떠올리면 막막했다. 프랜차이즈는 그 불안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이미 만들어진 교재와 검증된 커리큘럼, 초보도 따라갈 수 있다는 운영매뉴얼.


프랜차이즈로 교습소를 차린다고 해서 내 수업 철학을 내려놓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틀은 빌리되

수업의 질을 올리는 것은 여전히 나의 일일 거라고 믿었다.


처음에는 정말 그랬다.


정해진 매뉴얼이 있었지만, 결국은 강사의 역량이 더욱 중요했다. 프랜차이즈 교육프로그램은 마치 나를 보호해 주는 울타리처럼 보였다. 적어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자

성과, 효율이 나지 않았다.

본사에서 회원 모집에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교재비는 교육비의 30%를 육박했다.


프랜차이즈에 입성한 순간부터 나는 프리랜서 강사가 아니라, 시스템의 부속에 불과했다.



#거리규정의 진실


프랜차이즈 설명회에서 가장 강조했던 말 중 하나는 '거리규정'이었다.


"같은 브랜드끼리는 서로의 영업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일정 반경을 유지합니다"


많은 사업자들이, 거리규정을 믿고 프랜차이즈를 계약한다.

나는 그 규정이 최소한의 신뢰를 지키는 장치로서 작동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약육강식의 시대.



수업을 마치고 교실 불을 끄려다, 맞은편 상가에 불이 켜진 걸 발견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어 있던 공간이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 동네에서 상가 불 하나 켜지는 일이 뭐 그리 특별할까 싶었다. 그런데 시선을 다시 돌린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현수막에 적힌 로고가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같은 프랜차이즈였다.


색감도, 문구도, 브랜드 이름도 내가 쓰고 있는 것과 같았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현수막을 다시 읽었다.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데 몇 초가 안 걸렸다. 머릿속에서는 소리 없는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떤 연락도 없었다.
사전에 들은 이야기도, 본사의 안내도 없었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바로 옆에 같은 이름의 학원이 생긴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본사에 전화를 걸었다. 최대한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돌아온 답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규정상 문제는 없고,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의 거리는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곳에 새로 오픈한 원장이 나보다 오래 프랜차이즈로 계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사정상 허락해 주었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규정은 보호막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해석되는 문장일 수도 있다는 걸.

그것은 핑계일 뿐, 프랜차이즈 본사 입장에서는 가맹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익을 내는 다다익선의 구조였다.


며칠 뒤, 그 학원은 화려하게 개원했다.
체험 수업 안내가 붙었고, 할인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때부터 학부모들의 질문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같은 브랜드냐는 질문, 비용 차이에 대한 질문,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될 말들이 상담 사이사이에 끼어들었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설명했다. 같은 브랜드여도 운영 방식은 다를 수 있고, 수업의 방향은 원장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설명은 언제나 설명일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동네를 걷는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문을 열 때마다 괜히 주변을 한 번 더 살피게 되었고, 아이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유지하려 애썼다. 말 한마디 없이, 바로 옆에 들어올 수 있다는 구조라니.. 그건 명백히 선을 넘은 일이었다.

그날 밤, 쉽게 잠들지 못했다.


이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을지, 내가 믿어온 방식이 이 상황에서도 의미가 있을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전까지 나는 조용히 잘하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이 세계에는 조용함을 배려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아무 말 없이도, 누군가의 일상과 생계를 흔들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이 일을 바라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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