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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Mar 15. 2023

요즘 선생님

권위적인 선생님을 대하는 법

우리 집이 망하기 전까지는 나도 여느 집 초등학생처럼 밝고 거침없는 아이였다. 시골이지만 한때는 대학생 과외선생님이 와서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했고, 피아노 학원도 다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영어학원도 다녔다. 여기저기 다녔던 학원 생활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초등학교에서 만난 선생님과의 일화다. 나는 지금도 길 찾는 걸 잘 못하는 심각한 길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교실을 못 찾아 한참 헤매고 들어선 교실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채근보다는 왜 늦었는지 이유를 설명하게 해 주셨다. 나는 부끄러운 마음에 교실을 못 찾았다고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오다가 동생을 만나서 늦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교실을 찾아 헤매느라 더러워진 실내화를 벗어 들고 들어서자,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박수를 쳐주자고 하셨다. 내가 만난 선생님들 중 가장 따듯하고 정직하고, 올바른 교육을 하셨던 분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도 담임 선생님이 되었는데, 나는 유독 그때 받은 상장이 많다. 공부는 물론이고 늘 밝았으며 학교에서의 생활이 너무 재미있었다. 


얼마 전, 개학 첫날 4학년 딸아이가 울면서 집에 왔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선생님이 이유 없이

"인사 똑바로 안 해?!"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지각을 한 것도 아니고, 인사를 안 한 것도 아닌데..

무슨 연유인지, 첫날 하루 종일 반 아이들은 계속 혼났다고 했다. 

같은 반 친구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니, 어떤 친구는 교과서를 선생님한테 내야 하는데, 가로로 주지 않고, 세로로 주어서 예의가 없는 어린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인사를 안 한 것도 아니고,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일면식도 없는 새로운 선생님이 소리를 질러대니, 딸아이가 받았을 충격이 짐작이 갔다. 

나는 웬만하면 학교에 전화도 안 하고, 선생님께 따로 연락도 잘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선생님께 첫날부터 전화를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서,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선생님은 전혀 기억을 못 하셨고, 오히려 놀라신 눈치였다. 


"딸아이가 오해를 했나 보네요..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문제는 다음날 시작됐다.

등교준비를 마친 딸아이가, 신발을 신으면서부터 울기 시작했다. 도저히 학교를 못하겠고, 선생님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펑펑 울었다.

결국 학교에 가지 못했다. 


오후에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 반에 유독 말을 안 듣는 남자아이들이 많이 배정이 되어서, 첫날부터 군기를 잡은 것인데, 딸아이가 특별히 잘못한 것은 없었고, 소리가 안 들려서 그랬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도 많이 당황하신 눈치였다. 다른 엄마들에게 들어보니  좀 무서운 선생님이라고 소문이 나있었다.

일단 나는 따지지 않고, 딸아이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했다. 이렇게 놀란적이 처음이라는 나의 마음상태도 최대한 친절하게 비춰 말했다. 

이런 경우엔, 말투 하나도 조심해야 한다. 정말 별 것 아닌 일로 선생님과 다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학부모로서 선생님을 존중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 중요하다. 

선생님은 나름대로의 교육방식이 있었다. 일단은 무섭게 해야 아이들이 말을 듣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했을 때 아이들끼리 학폭 같은 문제가 없고, 교실에서 재미있고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선생님이 상식적인 선에서 아이들을 통솔하고 있다고 느꼈다. 요즘 아이들 다루는 것이 너무 힘들다 보니,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검증된 방식이리라.

솔직히 아무리 그래도 난 권위적인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는다. 별수 없이 최대한 선생님을 믿는다. 


선생님께 그런 선생님의 교육관과 딸아이가 충돌하지 않도록 적극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걱정하며 잠 못 드는 딸아이에게 말했다.


"우리 선생님을 믿어보자. 그리고 학교생활이 즐거울 수도 있으니까 선생님과 우리에게 기회를 줘보자."


딸아이는 

2주째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요즘 선생님들 참 힘드시겠지만, 학부모 노릇도 참 힘들다.



딸아이도 나처럼 기억에 남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가방메고 우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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