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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Mar 20. 2023

나의 어린 시절

우리 집도 행복하던 순간이 있었다. 시골이었지만, 한 마당 안에 집이 두 개였고, 안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바깥채엔 우리 가족이 단란하게 살았다. 동생과 안채에서 바깥채까지 누가 먼저 가는지 달리기 시합을 하며 숨이 막힐 정도로 다치기도 했다. 운동장 같던 마당엔 시암이 있었고, 시암에서 물을 퍼서 생선도 씻고, 우리도 씻었다. 어른들은 우리 집이 지하수가 나오는 집이라고 했다. 시암 옆엔 수돗가가 있었다. 연탄불에 달궈진 뜨거운 물을 엄마가 대야에 촤~ 하고 부어주면 찬물을 섞어서 머리도 감고 세수도 했다. 어느 날은 물이 너무 뜨거워서 머리가 익어버린 날도 있었다. 잘려나가는 고등어를 보며 생선이 불쌍하다며 울고 불며 난리를 떨었던 시암.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할머니는 종종 그 이야기를 하시며 활짝 웃곤 하셨다.

  "고등어 피난다고 자르지 말라고 얼마나 울었는가 몰라. 우리 지희는 마음이 참 착하당께"


남동생과 나는 시골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윗동네 아랫동네 조무래기들과 신나게 놀며 자랐다.

 아빠는 가끔 아이스크림을 사 오셨다. 한겨울밤 이불속에서 먹던 투게더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맛이 있던지······. 귤 한 박스도 다 까먹을 정도로 우리는 잘 먹었다. 아빠가 오지 않는 날이나 새벽 늦게 오는 날이면 엄마는 외로워 보였고, 우리도 덩달아 아빠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그 시절 많은 가장들이 그렇듯, 아빠는 우리와 놀아주기보다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어쩌다 가끔 먹고 싶은 것을 사다 주는 가끔 보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아빠가 하는 일이 잘 되는 때는 우리 집도 행복했고, 집안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돌 때는 어김없이 큰 싸움이 일어났다.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일 년이 조금 넘었다.

괜찮은 줄만 알았다. 엄마가 오랜 병시중에 지쳐갈 때쯤 아버지는 조용히 세상과 이별하셨다. 나는 미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풀지 못했다. 나는 안다. 이제 내 마음속 끝없이 깊은 시암에서, 뚜껑을 열고, 차갑고 차가운 이야기를 퍼올려 씻어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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