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하 May 28. 2023

아무리 팔짱을 끼어도 아빠는 바뀌지 않았다.

#아빠도 잘 살아보려고 그랬던 거다.


 어쩌다 가족끼리 나가게 되면, 엄마는 가서 아빠의 팔짱을 끼라고 했다. 

"애교 좀 부려봐, 술좀 그만마시라고……. 아빠가 네 말은 들을 거야."

그러면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팔짱을 끼어도 아무리 그만 마시라고 해도 아빠는 바뀌지 않았다. 

 글을 쓸 때 고민이 되는 것은 나의 어두웠던 과거를 들추면, 꼭 부모님의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왜 그토록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가 왜 걸핏하면 싸우며 살았는지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치부는 곧 나의 치부이다. 꼭 치부를 드러내는 것만 같아서, 미루고 미뤘다. 언젠가 어렸을 적 엄마가 쓴 가계부를 본 적이 있다. 외숙모 금반지 두 돈, 누구누구 내복 몇 벌, 돌잔치를 하고 받은 귀한 목록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렇다. 나는 엄마 아빠의 최고의 기쁨이었고, 주변 친지들의 사랑의 선물도 넘치게 받았다. 그런 내가 부모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배은망덕한 일이다.


 혼자 보는 일기장에 적어 두고 힘껏 눈물을 쏟곤 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우리 부모님도 억울했을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모악산 근처에 놀러 갔다가 배가 고파 한 식당에 들어간 적이 있다. 바지락 칼국수를 시켰는데, 해감을 안 시켰는지 달디 단 국물 뒤에 모래가 씹혔다. 모래까지 먹고 싶을 정도로 배가 고팠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주인에게 말을 하자 오히려 화를 냈다. 아빠는 칼국수를 다 먹지도 못하고 나오면서, 사장님도 속상할 테니 이거라도 받으라며 오 천 원을 놓고 나왔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마음이 따듯하고, 손해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시골집 뒷동산 과수원에는 한쪽에 동산을 따라 아카시아 꽃이 푸짐하게 피었다. 솜사탕 같은 아카시아 꽃 향기가 진동하는 계절이면, 아빠는 아카시아 꽃을 따서 술을 만들곤 했다. 냄새는 달콤한데, 꽃잎은 텁텁하고, 꿀이 나올 것 같은 꽃꼬랑지에서는  아무 맛도 안 났다. 보기에는 이쁘지만 실제론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는 무지개처럼 아득한 아카시아꽃 향기가 얄미웠다. 뒷동산에서 뛰어놀다가 옆을 바라보면 파란 통을 들고 아카시아 꽃을 따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몇 년 전까지도 아빠는 아카시아 꿀을 잘 만드는 곳을 찾아서, 매년 꿀을 사서 주시곤 했다. 돌아가시고 나니, 별것 아닌 기억들이 별처럼 소중해진다.

 아빠는 가끔 술을 마시고, 동생과 나를 마당에 앉혀 놓고, 잔소리를 했다. 주로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공부를 못한 슬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린 나이라 이해할 순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꽤 지루한 이야기다. 아빠는 집을 팔아서 조그만 슈퍼를 할 것이라고 했다. 없어서 못 먹는 사탕이며 과자가 가득한 한쪽 구석을 매일 드나들 생각에 신이 났지만 아버지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때는 인테리어 사무실 명함도 집안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게 친했던 큰 외숙모가 우리 집에 찾아와 엄마에게 큰소리를 내며 아가씨가 어쩌고 저쩌고 하며 고함을 치던 일이 생각난다. 그랬다. 우리 집은 여기저기 돈 받아야 할 사람이 많았고, 아빠는 아예 집에 안 들어오거나 늦게 오는 날이 많아졌다. 

아빠도 잘 살아보려고 그랬던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사업에 실패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뒷동산에 피던  아카시아 꽃을 오래 볼 수 있었을까? 술좀 조금 마시라고 내가 이야기하면, 아빠는 좀 바뀌었을까? 

아마 그랬을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이해되지만 아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