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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24. 2023

문정희 시인 <키큰 남자를 보면>


문정희 시인 


<키 큰 남자를 보면>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걸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 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을까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보고 싶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 눈썹에 

한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늘을 조금씩 갉아먹고 싶다

누에처럼 긴 잠 들고 싶다

키 큰 남자를 보면





 이 시를 읽고 매우 인상이 깊어서 옆에 있던 남편에게 문정희 시인의 ’ 키 큰 남자를 보면 ‘이라는 시를 읽어주었다. 이런 시를 읽고 나서 보통의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특히 보통 수준이라고 할 수 있는 키가 170 언저리 정도되는 남자의 느낌은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애처로운 누군가는 괜히 억울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뜬금없이 키가 작다는 의문의 일패를 당한 남성의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을 듯하다. 특히 평소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단순히 외모적인 '키큼'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마음이 큰 사람을 뜻하는 것이다. 마음이 큰 사람을 만나면 그것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다. 좋은 것을 넘어서 존경하는 마음까지든다. 인생을 살아가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 인간관게를 맺으면서 다양한 형태로 보이는 것을 뛰어 넘는 어떤 시비함을 느끼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정희 시인의 ’ 키 큰 남자를 보면 ‘이라는 시는 참 앙큼상큼하다. 키 큰 남자가 좋다는 여자들의 내면을 잘도 꿰뚫었다. 키 큰 남자를 보면 팔에 매달리고 싶다는 표현은 어릴 적 오빠에 대한 기억과 맞물려 보통의 수준보다 키 큰 사람이 아닌, 어린 시인에게 오빠처럼 커 보이는 키 큰 남자에 대한 동심의 마음을 대변한다. 눈썹을 만져보고 싶다면 필히 눈썹의 숱이 많아야 한다. 그냥 만지는 것이 아니고 펄럭이는 눈썹을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만져보고 싶단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눈썹이라면 키도 큰 데다가 얼굴도 잘 생겼을 것 같은 환장하는 독백의 탄성과 환상의 나라가 펼쳐진다. 

 누에처럼 긴 잠들고 싶다에서 끝났다. 이건 그냥 키가 커서 좋다는 뜻이다. 아무리 어릴 적 추억을 갖다가 무마해보려고 해도, 키 큰 남자를 좋아하고 의지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까발려버렸다. 남몰래 숨겨왔던 마음을 들켜버린 듯 묘한 기분이 든다. 외모 같은 거는 안 보고 마음을 본다고 큰소리쳤던 철없는 시절의 절규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키 큰 미남 영화배우를 제일 좋아하면서 사람은 내면이 중요하다고 허세를 부렸다. 보험은 노련한 여성판매원의 설명을 두 시간이나 듣고  결국 키 크고 잘생긴 남성에게 들었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남자도 결국은 여자의 외모를 보지 않는가? 얼굴만 이쁘고 대학생활은 성실하지 못했던 친구가 취직도 제일 먼저 하고  시집도 제일 잘 갔다는 소싯적 가십거리들을 애써 들이밀어본다. 여고 시절 얼굴이 예쁜 아이가 학교에서도 제일 주목을 받았다. 예쁜 여자는 남녀노소 다 좋아한다. 그러니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 게 뭐 어떤가?

 시를 다 듣고 난 후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내 키가 180cm가 넘었으면 당신을 어떻게 만났겠어” 내가 진 게임이지만 은근히 억울해서 다시 싸우고 싶어졌다. 그렇다. 내 키가 작은 편이라 우리는 딱 보기가 좋다. 우리는 서로 분수에 맞게 만났다. 남편에게 키가 크다는 것은 단지 키만 큰 것이 아니고, 지금 보다 더 나은 모든 것들이란 것이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때로는 남편이 너무 여과 없이 말해서 얄미울 때가 많다.

문정희 시인의 시는 정말 솔직하다. 시를 쓰려면 이렇게 까지 써도 되는 것인가 놀라기도 한다. 글 쓰는 입장에서는 시인의 그런 솔직함이 얄밉지 않고 부럽다. 까발려지니 오히려 시원하고 상쾌하기까지 한 묘한 기분까지 든다. 분위기 좋고 키 큰 남자가 지나갈 때 뒤돌아 본 적도 있으면서, 수풀처럼 휘날리는 남편의 눈썹 숱을 치면서도  글 한번 쓰지 않았던 어리석음을 자책해 본다. 이 시를 읽고 가끔 딴생각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한번 웃자고  시를 쓰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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