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과 은희
제2화
“야옹―.”
창문너머 들리는 소리에 선영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선영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흘깃 바라봤다.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 고양이만 아니었다면 오늘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을 것이다. 오늘 회의가 끝나면 경비실에 들러서 확실한 조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영의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정말 고양이가 싫어.’
퇴근길, 그녀의 눈에 낯익은 장면이 들어왔다. 운동장 끝, 교복 차림의 승희가 무릎을 굽혀 길고양이에게 간식을 내밀고 있었다.
“얘,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불쾌함이 표면을 뚫고 나온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고양이한테 이런 걸 주니까 자꾸 학교로 들어오는 거 아니야!”
승희는 서둘러 인사하며 움추린 어깨로 교문을 나섰다.
사실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승희와 고양이에겐 잘못이 없다는걸. 하지만 그녀는 고양이와 승희를 향해 미움의 화살을 던지고 있었다. 자기 환경은 생각하지도 않고 늘 착한 척, 여유로운 척 세상 모든 약자에게 연민을 품는 쓸데없는 동정심을 가진 사람들을 경멸했다.
‘하여튼 꼴 보기 싫은 것들이 더 한다니까.’
선영은 발치에 있던 돌멩이를 들었다. 망설임없이 힘껏 고양이를 향해 던졌다. 고양이는 깜짝 놀라 꼬리를 세우고 도망쳤다. 그제야 선영은 숨을 내쉬었다. 마치 제 안의 뭔가를 몰아내기라도 한 듯이.
“김씨 아저씨! "
그녀는 목청을 높였다. 그녀는 김씨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내가 몇 번을 말했어요? 고양이 못 들어오게 하라고! 여기가 고양이 소굴이야 아주! 일 좀 똑바로 하라니까!”
경비실 안에서 김씨가 허둥지둥 나왔다.
“죄송합니다, 교장선생님.”
경비 김씨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세월이 내려앉은 흰머리가 경비라고 써있는 모자 사이로 불쑥불쑥 나와 있었다.
“하여튼, 하라는 일도 똑바로 못하고 쯧”
선영은 더는 말을 섞을 가치도 없다는 듯 혀를 찼다.
김씨는 말없이 몸을 숙인 채 그녀가 떠날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잠시 후 학교 앞 골목은 고급 스포츠카의 굉음과 함께 적막을 되찾았다.
선영은 백미러를 슬쩍 흘겨보며, 김씨의 구부정한 등을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듯 가속을 높였다.
퇴근 후, 그녀의 하루는 노을이 비치는 창가에서 시작되었다. 거실 한가운데 자리한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는 순간, 모든 방해물은 문밖으로 밀려나고, 남은 것은 오직 그녀와 음악 뿐이었다. 손끝은 공기를 위를 수영하듯 가볍게 움직였고, 빠르고 우아한 음들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럴 때면 그녀는 스스로가 얼마나 멋진 삶을 사는지 새삼 확인하곤 했다.
‘이보다 완벽할 순 없어.’
그때,
“월! 월! 월!”
개 짖는 소리가 피아노 선율을 가차없이 멈췄다. 선영은 순간적으로 모든 흐름을 잃었다.
“아, 진짜… 저놈의 개.”
선영은 손을 번쩍 들어 이마를 짚었다.
“신고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못 잡았대? 미치겠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장은희가 서 있었다.
“어, 장 선생. 열쇠 여기.”
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열쇠꾸러미를 건네려 했다.
그러나 은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교장 선생님… 죄송하지만, 사정이 있어서 학교에 늦게까지 남을 수가 없어요. 순찰 업무는 다른 분이 맡으시는 게…”
“뭐야? 그럼 아까 말했어야지, 지금 뭐 하는 거야?”
선영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내가 장 선생이랑 같아? 이런 사소한 일 신경 쓸 시간이 있는 줄 알아? 어디서 이따위로 일을 해?”
“아버지가 갑자기 다치셔서 집에 가봐야 해서요…”
은희는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레 변명을 덧붙였다.
“그건 장 선생 사정이지. 내가 먼저 말했잖아. 열쇠 받아가라고!”
선영은 열쇠꾸러미를 바닥에 내던졌다. 쇠붙이가 부딪히며 거실에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겁에 질린 은희는 울음을 삼키며 허겁지겁 집을 나섰다.
‘내 덕분에 밥 먹고 사는 주제에… 능력 없는 것들은 꼭 저렇게 거슬린다니까.’
선영은 이를 악물었다. 다음 계약 때 은희를 명단에서 지우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손가락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분노가 섞인 선율이 대궐 같은 집을 울렸다.
그때,
“야옹―.”
낯익은 소리가 창밖에서 들려왔다.
선영은 피아노에서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아니, 여긴 또 어떻게 들어온 거야!”
붉게 물든 하늘 아래, 그 고양이는 마치 그녀를 비웃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