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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고양이 제7화 최종화

by 공작

눈을 떠보니 깊은 새벽이었다.

차가운 풀잎 위에 몸을 웅크린 채, 그녀는 잠시 자신이 어디 있는지조차 잊었다.

그때, 부드럽지만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귀에 스쳤다.

“무슨 잠을 그렇게 오래 자? 갈 곳이 없는 거야? 조심해. 여기 학교 교장이 바로 옆에 사는데, 얼마나 우리를 싫어하는지 알아? 오늘은 나한테 돌을 던졌다니까.”

새끼 고양이들의 엄마였다.

선영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 교장이… 바로 나인데…’

차가운 공기와 함께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아… 그렇구나… 난… 정말 지금까지 내 생각만 하고 살았네.”

속으로만 중얼거렸지만, 입 밖으로는 내지 못했다.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조심해.”

엄마 고양이는 다시 새끼들에게 몸을 말았다.

선영은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풀숲을 나서며, 천천히 집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만에 숨이 가빠졌고, 다리는 무겁게 끌렸다.

하루가 꼭 십 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을까…’

자존심이 쓰렸다.

그토록 멸시하던 고양이에게 도움을 받다니.

‘내가 사람들을 괴롭히고 살아서, 이런 벌을 받은 건가…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경비원! 경비원!”

본능적으로 목청을 높였지만, 경비원의 귀에는 그저 거슬리는 고양이 울음소리로만 들렸다.

“아이구, 또 왔네. 교장선생님한테 혼나겠다. 저리 가!”

경비원이 손을 휘저으며 쫓아내자, 선영은 더 다급해졌다.

그 순간—

멀리서 짧고 거친 개 짖음이 바람을 가르며 다가왔다.

처음엔 귀 속에서 울리는 환청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아까 그 개가, 이빨을 드러낸 채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송곳니가 햇빛에 번쩍였다.

선영은 숨이 턱 막히며 몸을 돌렸다.

발톱이 돌바닥을 긁으며 튀어 올랐다.

심장은 미친 듯이 두드렸고, 폐는 불에 덴 듯 타들어갔다.

‘안 돼, 잡히면 끝이야!’

그러나 바로 그때—

부릉―!

거친 엔진음이 귀를 찢었다.

골목 모퉁이를 돌던 오토바이가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그대로 그녀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꺄악!”

짧은 비명조차 내지를 틈도 없이, 온몸이 충격에 휩싸였다.

눈앞이 하얗게 번쩍이며, 세상이 한순간 뒤집혔다.

몸이 공중으로 높이 튕겨 올랐고,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그 짧은 부유감 속에서, 아스팔트와 하늘이 번갈아 시야를 스쳤다.

‘아… 이렇게 끝나는 건가…’

머릿속이 차갑게 식었다.

수많은 얼굴들이 스쳐갔다.

굽은 허리의 경비, 눈물 흘리던 장은희, 상장 명단에서 지워진 승희…

그리고, 자신이 외면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

‘내가 잘못 살았구나…’

마지막 생각과 함께, 어둠이 거세게 덮쳐왔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차가운 풀잎과 억새풀 냄새 대신, 코끝에는 날카로운 약품 냄새가 스며들었다.

순간, 몸을 움츠리려 했지만 부드러운 시트의 감촉이 등을 받쳤다.

‘여긴… 어디지?’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창문 밖으로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리고, 발치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길가에서 쓰러져 계신 걸 가사도우미가 발견해서 바로 응급실로 옮겼어요.”

흰 가운 차림의 의사가 차트를 넘기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어진 진단.

“일찍 발견돼서 다행입니다. 가벼운 뇌진탕이에요. 일주일 정도만 입원하시면 됩니다.”

순간, 선영은 얼어붙었다.

자신이 다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급히 두 손을 올려다보았다.

털 대신 부드러운 피부, 다섯 손가락.

침대 위에 놓인 건 발톱이 아닌, 익숙한 손이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말이 입에서 또렷하게 흘러나왔다.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내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다.’

퇴원 후, 선영은 곧장 학교로 향했다.

교장실 책상 위에는 상장 수상 명단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잠시 펜을 들고 멈칫했다.

예전이라면 당연하다는 듯 지워버렸던 이름, ‘이승희’.

기부금을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삭제했던 그 이름을, 이번엔 또박또박 맨 위에 적었다.

글씨가 적히는 순간, 마음속 어딘가에서 오래된 돌덩이가 떨어져나가는 듯한 가벼움이 밀려왔다.

일을 마친 선영은 교무실을 지나 학교 근처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이 스치는 풀향기 사이로, 낮게 울음소리가 들렸다.

풀숲 끝에 다다르자, 새끼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그 옆에는 장은희가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사료를 덜어 그릇에 담으며, 마치 오래전부터 돌봐온 듯 익숙한 손길로 고양이들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아, 교장선생님…”

장은희가 선영을 보자마자 부 startled 듯 일어서며 두 손을 모았다.

“죄송합니다. 다신 이런 일 없겠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두려움과 경계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선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눈빛으로 장은희를 바라보았다.

“아니야, 장 선생.”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새끼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었군… 고마워.”

“네…?”

장은희의 눈이 커졌다.

익숙한 꾸중 대신, 처음 듣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놀라움이 묻어났다.

선영은 잠시 고양이들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그동안 너무했어. 추울 것 같은데… 집을 하나 지어주려고 해.”

장은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놀란 눈으로 선영을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교장’이 아닌, 한 사람으로서의 선영을 마주한 듯했다.

학교로 돌아오는 길, 저녁 햇살이 담장 위로 길게 흘러내렸다.

노을빛이 그녀의 그림자를 길게 끌고 갔다.

그 그림자는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모를 모양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선영은 굳이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담장 너머에서 고양이들의 부드러운 울음이 바람에 실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오래전 잊고 지냈던 이름을 불러주는 것 같았다.

그 사이로,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파도처럼 번졌다.

한때는 공포와 불쾌함이었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다르게 들렸다.

고양이의 울음과 개 짖음이 겹쳐져, 마치 세상이 한 호흡으로 숨 쉬는 듯 울려 퍼졌다.

선영은 발걸음을 멈추고, 노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알았다.

이제 두 소리 모두, 자신이 품고 살아가야 할 세상의 일부라는 것을.




이 소설은, 문득 떠오른 한 사건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한 후배가 어떤 중학교에 임시관리 교사로 일하게 되었었는데요. 학교 건물 관리 업무까지 맡는 것이 부담이 되어 그만두고 싶은데 , 같이 가달라고 했어요.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시작하기 전에 그만두는 것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러 간 거였어요.


그런데 그만 거기서 못 볼꼴을 보고 맙니다.


그만둔다니 교장이 노발대발하면서

너 때문에 사람을 다시 뽑아야 한다며

무릎을 꿇으라고 했고, 그 후배는 무릎을 꿇었어요. 아직도 울며 무릎 꿇은 후배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는 그 후배에게 무릎 꿇지 말고 계속 나오라고 했고,

그 교장은 같이 간 저에게 까지 소리를 쳤습니다.


그땐 정말, 이 사회의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못됐을까. 못된 어른이 왜 이렇게 많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앞으로 청소년들이 사회에 나가서 만나게 되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소설을 처음 써봅니다. 그래서 일단은 끝내자는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하였습니다.


아직 뼈대에 불과 하지만, 다시 더 좋은 이야기로 탄생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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