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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04. 2022

계란때문에 피를 본 사연

집에서 일하는 엄마의 일상


 흰자와 껍데기가 순간접착제 마냥 딱 붙어서 도저히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미니언즈 도시락을 싸는 데는 어차피 노른자만 필요하긴 하지만 흰 자가 이대로 버려지면 아깝다. 종이장처럼 얇디얇은 계란 껍데기와 붙어서 한없이 부서지는 흰 속살을 떼려다가 그만 계란 껍데기에 찔려 피가 났다. 분명 유튜브로 봤을 땐 찬물에 패대기를 치면 잘 까졌었는데, 바쁜 아침에 피를 보고야 말았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3년 만에 현장체험학습을 간다. 3년 만이라 그런지 착착 진행되어야 할 도시락 싸기 순서가 꼬이니 주방이 금방 어지러워지고 그릇도 이것 저것 정신이 없다. 결국 흰자는 건지지 못하고 겨우 얻은 노른자를 밥에 섞어서 소금이랑 참기름을 넣고 동글동글 말고, 밥 위에 눈 역할을 할 치즈를 공들여 붙였다.

 '그런데 어라? 뭔가 이상하다.'

그냥 유령 같았다. 아무리 핼러윈데이가 가까워 오고 있지만, 3년 만에 가는 소풍인데 유령 도시락을 싸기는 좀 그렇다. 어디선가 본 미니언즈는 분명 앙증맞고 먹기도 아까운 미니언즈였다.


 “엄마 눈동자가 없잖아!”


딸이 쪼르르 달려와 말한다.

'아하! 치즈 위에 눈동자를 붙여야 하는구나.'


김을 조그만 동그라미 모양으로 오려서 치즈 위에 붙이고 나니 화룡점정이다.


 6시부터 일어나 도시락 싼다고 잠을 설치고 다크서클이 내려와도 나만의 일을 시작하는 오전이다. 집에서 일을 하려면, 눈앞에 보이는 집안일을 어느 정도는 모른 척할 수 있는 둔감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계란 껍데기를 잘 까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집에서 일하기에 최적화된 나의 천부적 재능일지도 모르겠다. 피를 본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집안일을 먼저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일단은 씻고 옷을 제대로 입어야 한다. 그러면 출근하는 기분이 들고, 일에 관련된 전화를 받아도 더 전문적으로 응대할 수 있다. 자발적 실업자가 된지 2년만에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터득한 방법이다. 


'금일 오전 10시 20분에 서울랜드에 무사히 잘 도착하였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 서울랜드에 잘 도착했다고 아이폰의 시리가 문자를 읽어준다. 한 달 동안이나 기다린 3년 만에 가는 딸아이의 소풍이 즐거운 추억이 되길 바라며 집에서 일하는 엄마의 일상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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