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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07. 2022

신부보다 더 이쁜 친정엄마-송편이론

송편이론 불변의 법칙


거추장스러운 웨딩드레스의 불편함보다는 설렘과 긴장감이 더 컸던 결혼식장에서였다.

친척들의 인사를 받으며, 대기실로 가던 길.

"예쁘네~"

라는 송구스럽고도 달콤한 인사를 받았다.


“어떻게 엄마가 신부보다 더 예쁘네~”

라고


외숙모가 하는 말을 내가 듣고 말았다. 


쉰다섯. 한복을 입은 엄마는 어느 때보다 우아하고 참 예뻤다. 


어린 시절 엄마의 하루는 화장과 머리손질로 시작되었다. 외모관리에 철저했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시작한 일은 미용사였다.

어쩌다 들른 엄마의 미용실은 아담했지만 손님이 많았다. 그 후로 엄마는 하루도 쉬지 못하고

미용실로 출근을 해서 아빠를 대신해 우리를 먹여 살렸다. 

퇴근할 때면 꼭 저녁거리를 사 와서 밥을 해주고, 배불리 먹여주고, 혼자 집안일을 했다.


어렸을 땐, 엄마가 예쁜 게 좋았다. 예쁜 엄마의 딸로 살아가는 일은 마치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 하나 있는 듯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연예인이 되었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았겠지만,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고 와서 

식구들 밥을 먹이고 집안일을 하는 고단한 인생은

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자 남다른 후덕함을 가지게 되었고, 

외모에 관심이 없던 내가 객관적으로 내 외모 수준을 가늠할 때쯤, 

엄마가 예쁘다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예쁜데, 

"너는 왜….."

친구들은 말을 흐렸다. 


어쩌다 엄마의 친구들이라도 만나면

"니가 지희구나~"

라는 말 뒤에 숨은, 미묘한 감정이 신경쓰였다.



“아이고, 어쩜 이렇게 이쁘게 만드냐

니 딸 참 이쁘겠다.”


명절에 송편을 빚을 때면, 할머니는 내 송편이 이쁘다고, 

어린것이 손재주가 좋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러면서 꼭  덧붙이는 말은

너는 아주 예쁜 딸을 낳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딸을 예쁘게 낳는다는 전설의

송편 이론이었다. 

신문 위 쟁반으로 뭔가를 쥐어서 놓고 있는 엄마가 만든 송편은..


형편없었다…


늘, 엄마는 송편을 빚을 때면, 내게 송편 빚는 법을 배웠는데, 

도통 실력이 늘지 않았다. 그 후로도 변함이 없었다.

엄마의 송편 실력이 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퇴근 후에도 책 읽고 공부하는 것 이외에는 도통 외모관리에 관심이 없었다. 


사랑의 힘이 컸는지, 다이어트 결심을 하고 결혼식을 할 땐 9킬로를 감량하고, 

허리라인이 쏙 들어간 웨딩드레스를 입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년 만에 원래 몸무게로 돌아왔다.(남편은 이것을 사기결혼이라 했다) 


친정에서 앨범을 보다가, 45세의 엄마의 모습을 발견했다. 

딱 붙는 원피스에 세련된 화장. 당시 대학생이던 나보다 훨씬 예뻤다.


2년 후면, 나도 45세가 된다. 


엄마에게 운동하라는 말을 몇십 년째 듣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운동 좀 해!”

가 아니고 

“운동이라도 해”

다. 

운동하라는 말은, 운동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운동이라도 하라는 말은,

뭐라고 해보라는 엄마의 포기할 수 없는 간절함이 담겨있는 말이다. 

(물론 건강도 걱정되시겠..)


송편 이론에 의하면, 

이쯤에서, 내 딸은.. 예뻐야 한다. 

예쁠까?

예쁘다. 

예뻐서 미쳐버리겠다. 


2014년 어느 날 남동생이 사진을 보내왔다. 

“ 누나! 00이가 누나 어렸을 때랑 똑같고만!”

이상하다.


날 닮았는데, 이쁘다.


이것이 송편 이론 불변의 법칙인가. 

이대로만 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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