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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20. 2022

정장 입고 좀 걷겠습니다.

프리랜서, 게으른 개인사업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아이들이 등교한 후 , 몽롱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커피머신의 전원을 켠다. 어라,? 빨간 불이 켜진다. 커피 추출 후 매일 간단히 청소를 하지만, 네스프레소 버츄오 머신의 빨간불은 일반 청소가 아닌, 커피머신 깊은 곳에 남아있는 찌꺼기와 고인 물 까지 빼주는 디스케일링이라는 청소가 필요하다는 신호다. 급히 설명서를 보고 청소 절차를 따른다. 버츄오 머신은 청소하기가 상당히 번거롭다. 역시 설명서로는 안된다. 자연스럽게 유튜브 검색으로 들어가서 청소법을 검색한다. 찬찬히 따라 청소를 하다 보니 훌쩍 한 시간이 흘렀다. 커피 한 잔 마셔보겠다고, 커피 머신과 씨름하다가 오전 루틴에 차질이 생겼다.


급히 옷을 차려입고, 카페로 향한다. 카페에 오는 이유는 잠시라도 컴퓨터에서 벗어나 오롯이 집중을 하기 위해서다. 잠시라도, 자질구레한 청소 거리가 보이지 않아서 좋다. 카페로 오는 길에 신선한 공기를 느껴보기 위해 마스크를 잠시 벗는다. 흔히 선망의 대상이 되는 디지털노마드가 카페에서 여유롭게 일한다는 상상은 환상이다. 온라인 동영상을 제작해야 하는 나는 이런저런 장비를 챙겨 다니는 건 너무 불편한 일이기 때문에, 중요한 작업은 집에서 할 수밖에 없다. 이메일 확인과, 채널 톡, 문자 답장 정도..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점심시간엔 느린 산책을 한다. 옷차림은 운동복이 아닌 외출복이다. 운동복을 입고, 만보 걷기를 하면, 다시 씻고 옷을 또 갈아입어야 한다. 데일리 루틴의 효율성을 위해서 아침에 씻고, 출근룩 차림으로 지내다가 저녁식사 준비를 할 때쯤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외출복과 운동화는 어울리지 않을 때도 있다. 본의 아니게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기도 하지만 걸을 땐 발이 편해야 하니 꼭 운동화를 신는다. 핸드폰과 에어 팟만 있으면 걸으면서 오디오북, 강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신기하게도 옷에 따라 하고 싶은 일들이 달라진다. 옷을 편하게 입고 다니면, 몸가짐도 흐트러지고, 머리도 아무렇게나 하고 있게 된다. 하루가 그냥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외출복을 입으면, 머리도 단정하게 신경 쓰고,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게 된다. 게으른 개인사업자가 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나 할까. 나는 전업 주부일 때도 이런 작전을 사용했는데, 집에서도 이쁘게 입고 있으려고 노력했다. 비싼 옷이 아니더라도, 후줄근한 트레이닝복보다는 동네에 바로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옷차림이면 충분했다. 


얼마 전 지금은 그만두셨지만 유튜브 밀라논나님의 영상을 봤는데 밀라논나님은 평상시에도 일어나자마자 화장을 하고 옷을 갖춰 입는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액세서리를 좋아하는데, 외출복에 액세서리까지 하고 나면 금상첨화다. 결혼반지는 없다. 11년의 결혼생활 동안 가정에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아이들 돌반지와 함께 현금으로 바뀌어 요긴하게 쓰였다. 꼭 금이 아니더라도 저렴하고 세련된 액세서리도 많다. 특히 인터넷 구매를 추천한다. 얼마나 싸고 질 좋은 액세서리들이 많은지.. 금도 인터넷이 훨씬 저렴한 것 같다.   


밖에 나왔다가 다시 집에 들어가서 일을 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다. 참 일찍도 온다. 유치원 다닐 때 보다 더 일찍 온다.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고 다시 일을 할라치면, 수도 없이 엄마를 불러대는 아이들과 복작복작한 오후가 된다. 컴퓨터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대답을 하고 있으면, 일은 일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못 챙기게 된다. 그래서 되도록 중요한 일은 오전에 끝내려고 노력한다.

밖에 나와도 다시 집에 들어가야 하지만, 사무실에 출근이라도 하듯, 옷을 입고 매일 나온다. 또 누가 아는가. 사무실에 출근이라도 하듯 밖에 나오다 보면, 언젠가는 진짜로 내 사무실이 생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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