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칠순 기념으로 대만 여행을 다녀오다
난생처음 엄마와의 해외여행 (가족여행기)
잘 해낼 수 있을까?
"엄마, 나 유모차 때문에 피해 주다가 모르는 데로 와버렸어"
"아빠랑 꼭 붙어있으라니까 정말"
말소리와 발소리가 얽히는 야시장의 끝 저 멀리서 하율이를 찾아서 데리고 오는 남편이 보였다. 중학생이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잃어버릴까 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춘기 남자아이의 표정에서 좀처럼 찾을 수 없는 겁먹은 표정과 함께 횡설수설하는 아들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사람이 많아서 간신히 버블티만 한잔씩 사 먹고 관광버스로 돌아왔다. 그제야 야시장의 밤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만 타이중의 밤공기는 끈적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 추도호텔이 우리가 3박 4일 대만 여행할 동안에 묵을 숙소였다. 로비에 들어서자 말끔히 닦인 대리석 바닥이 황금빛 조명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기품 있게 자리 잡은 중앙의 꽃장식을 지나 B동으로 올라갔다. 가이드아저씨의 말대로 조식을 먹을 식당이 B동 1층에 있었다. 우리는 2인실 세 개와 3인실 한 개를 받았는데 엄마와 나 그리고 하린이가 같은 방이었다. 말이 3인실이지 2인실에 간이침대가 추가된 방이었다.
엄마와 여행을 하면서 한 공간을 같이 쓰는 건 기분이 묘했다. 친정집에 내려가 하루이틀 자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내가 결혼하자마자 전주를 떠난 지가 벌써 15년. 엄마와 그렇게 따로 산 시간도 15년이 훌쩍 넘었다. 엄마는 나와 손녀가 있는 자리에서 옷을 훌렁훌렁 다 벗었다. 딸아이 하린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사이 '하-악-'하는 소리와 함께 큰 하품을 하며 욕실로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낯설고도 익숙했다.
엄마의 알몸을 보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던 어린 시절, 일요일이 되면 할머니와 엄마는 동생과 나를 데리고 안덕원에 있는 목욕탕에 갔다. 아랫동네에서 윗동네로 한참을 걸어서 엄마의 거친 손길로 때를 미는 날이 너무 싫었다. 아프다고 떼쓰면 습기 어린 타일바닥에서 "가만히 좀 있어!" '철썩'하고 손바닥이 날아왔다. 어린 나를 잠재우기에는 언제나 이성적인 타이름 보다는 매가 빨랐다. 목욕을 끝내고 바나나우유를 먹지 못하고 돌아오던 밤 유난히 때가 났던 그 밤이 생각났다. 엄마는 왜 그렇게 나를 때렸을까......
난 정말 많이 맞았다. 엄마가 던진 돌에 맞은 적도 있다. 그런데 엄마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나는 수십 번 그날을 되짚고 가슴속에 아프게 묻어뒀는데 엄마는 정작 그 순간을 아예 살지 않은 사람처럼 기억이 안 난다니 반칙이었다.
칠순 잔치로 친지들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한다고 했지만, 엄마는 완강히 거절했다. 대신 온 가족이 다 같이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내가 여행을 앞으로 얼마나 가겠냐, 죽기 전에 해외에 많이 가보고 싶다"
남동생과 나는 2년 전부터 가족여행을 가기 위해 매월 돈을 모았다. 돈이 어느 정도 모여서 엄마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같이 해외여행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대만에 오게 된 것이다. 돈을 모으면서도 정말 다 같이 여행을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동생내외도 둘 다 일을 하고 있고 남편도 휴가가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동생이 대만에 가자고 한 순간부터 모든 일정이 척척 딱 맞게 조율되었다. 휴가, 시간, 비행기표까지.
"아이고 좋다"
엄마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거칠지 않았다.
낯선 나라의 호텔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엄마와 어린 시절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낯선 엄마와 함께 잠을 청했다.
언젠가 엄마가 더 나이가 들어 혼자 살기 힘들어지면, 같이 살아야 할 텐데, 난 그 낯섦을 극복할 수 있을까.
목욕탕을 나오면 사라지는 수증기처럼 나쁜 기억도 그렇게 증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