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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말했다. “시간은 인생이라는 재료로 빚어진 것이다.” 그는 단순히 시간을 ‘흘러가는 것’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모든 행위와 가치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만약 아무도 묻지 않는다면 나는 시간을 안다. 그러나 누군가 묻는다면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시간은 누구나 경험하지만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그러나 ‘Time’이라는 단어는 세 가지 차원에서 우리 삶에 깊은 울림을 준다.
사전에서 Time은 ‘사물이나 사건이 연속적으로 존재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뜻한다. 태양이 뜨고 지는 것,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것,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서 늙어 가는 것 모두 시간의 객관적 모습이다. ‘인생무상’이라는 말처럼 시간은 멈추지 않고, 모든 것은 변한다.
역사를 바꾼 인물들도 결국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성장했다. 토머스 에디슨은 “나는 실패한 적이 없다. 단지 잘못된 방법을 1만 가지 찾았을 뿐이다”라고 말하며 끝없는 실험을 이어갔다. 그는 어린 시절 듣지 못하는 장애와 학업 실패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하루 18시간씩 연구실에 틀어박혀 실험했고, 그 시간의 누적이 전구, 축음기, 영화 필름 같은 발명품으로 이어졌다. 사전적 Time은 곧 인간의 노력과 사건이 기록되는 무대인 셈이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간다. 강물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흐르고, 한 번 흘러간 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젊은 시절 마하트마 간디는 변호사로 성공하기 위해 런던 유학까지 떠났다. 그러나 그는 인도의 현실을 마주하고, 자신의 남은 시간을 민족 해방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만약 그가 안락한 변호사의 삶을 택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의 선택은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방향을 바꾼 사례다.
또한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시간은 가장 희귀한 자원이다. 시간 관리를 하지 못하면 다른 어떤 것도 관리할 수 없다”고 했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우리가 어디에 다리를 놓고, 어디서 물을 길어 쓸지는 우리의 몫이다.
Time 안에는 ‘me’가 숨어 있다. 이는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곧 ‘나’라는 뜻을 내포한다. 하루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사람은 결국 삶 전체를 허투루 보내는 사람이다. 반대로 작은 시간을 알차게 쌓아 올린 사람은 언젠가 큰 성취를 이룬다.
스티브 잡스는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간을 유한한 자원으로 보았고, 매일의 시간을 ‘내가 진정 원하는 일’에 집중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결국 애플, 픽사, 아이폰이라는 혁신은 그가 시간을 ‘me’, 곧 자기 존재의 증명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의 시인 박노해도 시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간은 우리를 만들기도 하고, 우리를 잃게 하기도 한다. 시간을 잃는 것은 곧 나를 잃는 것이다.” Time 속의 me는 결국, 내가 시간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곧 나 자신을 정의한다는 뜻도 포함한다.
Time은 사전적으로는 사건의 연속, 비유적으로는 강물, 함축적으로는 나 자신이다. 철학자, 발명가, 혁명가, 기업가 모두 이 단어의 진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증명했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이는 역사를 바꾸고, 어떤 이는 평범하게 지나간다.
영국의 시인 필립 체스터필드는 “시간은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값진 화폐다”라고 했다. 화폐는 잃으면 다시 벌 수 있지만, 시간은 잃으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
오늘의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곧 내일의 나를 만든다. 결국 Time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빚어내는 또 하나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