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는 용기
출근길이었다. 시계를 보며 바삐 걷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아이가 울며 떼를 쓰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계속 듣다 보니 중고등학생 정도의 여학생의 울음소리였다. 울음소리만 들릴뿐 가까운 곳에는 사고 난 흔적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도로 위쪽을 보니 버스 한 대가 서있었고, 몇 명이 쭈그리고 앉아있는 모습만 보였다. 그곳을 지나쳐오는 남학생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여학생이 저쪽에서 누워서 울고 있는데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기만 할 뿐 가볼 생각을 못하는 듯했다. 머릿속에는 온갖 나쁜 상상들이 번개처럼 스쳤다. 출근길이었기에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버스 앞에서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길가에 누운채로 고통스럽게 울고 있었다. 옆에 계신 아주머니들에게 물어보니 , 학생이 버스에서 내리다가 발목을 접질르며 넘어졌고 뒤따른 아주머니들이 학생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발목이 좀 부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닌 거 같아 안심이 되었다. 구급차가 오는 중이라고 했지만 학생은 더욱 크게 울었다.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나도 어찌할 바를 몰라 "학생, 조금만 참아요, 응급처치받으면 괜찮을 거예요"라고 하며 옆에 있어주었다. 그사이 학생의 엄마에게 전화도 아직 안된 상태라고 해서 먼저 엄마에게 전화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학생의 어머니는 일하는 중이라고 했다. 나도 아이들이 있기에 그 학생이 더욱 걱정되었다. 내가 출근만 아니면 학생의 병원까지 같이 동행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곧 구급차가 왔고 구급대원들이 조심스럽게 학생을 들것으로 옮겼다. 학생이 구급차에 올려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일어났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수고하셨어요"하며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좀 오지랖일지도 모르겠다. 학생의 엄마는 일하다가 딸이 다쳤다는 전화를 받았을 터였다. 얼마나 놀라고 당황했을까.
내가 직접적인 도움을 주진 못해도 상황을 좀 더 나아지게 하는데 작은 손길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바쁜 세상에서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하지만 잠시 멈춰 짧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면 세상은 한결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 학생이 무사히 치료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쁘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작은 손길이라도 건넬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