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찾는 시간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어느 날이었다.
서울 갔던 할머니가 거짓말처럼 마당에 앉아있었다.
"할머니! 언제 왔어!"
대문을 열자마자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내가 안 먹고 집까지 가져온 작은 쿨피스 앞쪽을 열어 할머니에게 주었다.
할머니는 목이 말랐는지 단숨에 들이켰다. 내 자두맛 쿨피스가 할머니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면,
나는 먹고 싶은 것도 참을 수 있었다.
울음이란 것이 꼭 무언가를 잃었을 때만 나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할머니의 눈물을 보고 처음으로 알았다.
사람은 억울하고 서러워도,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할 때 울 수 있다는 것을.
후에야 알았다.
서울 큰아버지네 집에서 살림을 맡아 아이들을 돌보던 할머니가, 쫓겨나다시피 내려오셨다는 걸.
서울서 식모살이한다는 말이 와전되어 큰아버지에게 들어갔고,
'식모살이하는 것 같으면 전주로 다시 내려가세요'라고 화를 냈다.
평생을 아들들을 위해, 며느리들을 위해 희생했던 할머니의 마음에 그날 얼마나 많은 상처가 쌓여 있었을까.
그래도 그때 나는 그저 좋았다.
이제 할머니가 다시 서울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이제 다시 할머니가 올날만 기다리고
있지 않아도 되니까.
할머니가 우리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다시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할머니는 나를 감싸주는 우주였다.
어느 날 할머니는 내 몸에 난 멍에 안티푸라민을 발라 주며, 엄마 욕을 했다.
“나만 없으면 왜 이렇게 애들을 잡는 거야 아이고…”
그 목소리 속엔 분노보다 걱정이, 서운함보다 사랑이 더 많았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때 할머니의 울음은
억울함보다도 자식에 대한 미련, 세상에 대한 서러움, 그리고 끝내 버리지 못한 자식에 대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할머니의 눈물은 그렇게, 한 줌의 나물 위에 떨어져 내 어린 시절이 되었다.
씁쓸하고 짭조름했지만, 그 서러움과 보살핌이 나를 길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