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을 못 찾아 헤매던 아이

그림자를 찾는 시간

by 공작

교실을 못 찾아 헤매던 아이


초등학교 3학년, 새 학년이 시작된 첫날이었다.
겨우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학교에서 교실을 찾아 헤매다 복도를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르겠다.
같은 번호판을 두 번이나 지나치고, 잘못된 반으로 들어갔다가 고개를 숙이고 다시 나왔다. 아무리 달려도

계속 같은 자리였고 결국 거의 마지막 종이 울리고 한참 후에야 교실 문 앞에 섰다.

문을 열자 선생님이 이미 칠판 앞에 서 계셨다.
나는 얼어붙은 채로 문턱에서 멈췄다. 혼날 줄 알았는데, 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으셨다.

“왜 늦었니?”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동생을 만나서요.”라고 얼버무렸다.
사실은 교실을 못 찾아 헤맸다고 말하기 부끄러웠던 것이다.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이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를 꾸짖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네. 늦게라도 잘 왔어. 얘들아, 우리 친구에게 박수 쳐주자.”


순간 교실 가득 박수가 터졌다.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손에는 더러워진 실내화가 들려 있었다.
길을 찾느라 운동장과 복도를 오가며 흙이 잔뜩 묻은 실내화.


"친구가 실내화를 벗고 교실에 들어왔어요."

선생님은, 더러워진 실내화를 벗고 들어온 나를 칭찬해 주셨다.


나는 그제야 천천히 자리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선생님은 나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아마 그날의 경험이 내 안의 ‘좋은 어른’을 만드는 씨앗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느린 아이들을 가르칠 때, 나는 화를 내지 않는다. 방과 후 교사로 일할 때, 옆 교실에서 나머지 공부를 시키는 선생님이 짜증을 내며 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실수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일 때,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를 때, 그때조차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참된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처럼

나도 누군가 길을 헤맬 때, 손 내밀어 “괜찮아, 잘 왔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