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면접: ‘나’는 누구인가
아, 잠깐만요! (1)
만 27살 어린 나이에 보험 영업에 도전했었다.
지금은 보험사들이 대학생 인턴십이다뭐다 해서 20대 초중반 보험설계사들을 대거 채용했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지점 최연소였다. 보험을 하게 되는 여느 계기와 마찬가지로 나도 친하게 지내고 믿고 따르던 학과 선배 형이 날 꼬셨다. 그 시절 나의 멘토였다. 나는 항상 이빨로는 광고바닥 최고였던 이 형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 형이 날 보험의 세계로 끌고 가다니…
지점에 가보니 형이 있는 팀의 팀장도 우리과 선배님이었다. 내가 군대 가기 전, 두 분다 복학한 선배였고, 학과 행사에 종종 인사하고 술도 먹으며 괜찮은 선배라고 생각했던 분들이었다. 괜찮다고 생각한 사람이 보험 영업을 하니 얼마나 더 괜찮은 사람(?)처럼 보였겠는가!
팀장 선배는 팀장으로 리크루팅을 담당하고 있어서, 날 자주 만났다. 날 보기 위해 기꺼이 먼 길 달려오고, 지점에서는 수트 차림에 빛나는 영업맨의 자태를 뽐내 주셨다. 여느 보험맨들처럼 이 형과 팀장 선배는 본인의 월급을 나에게 깠다. 누구처럼 월급 명세서를 던지며 “봐라” 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충격적인 액수였다. “너도 할 수 있어”라는 말에 홀리듯 면접 일정을 잡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면접은 1차 팀장, 2차 지점장, 3차 본부장 면접을 거쳐야 했다. 팀장은 리크루팅하기 위해 몇 번 만나서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기 때문에 그 동안 내가 괜찮은지 파악을 했다. 팀장 선배는 처음 나를 만났을 때 내가 본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악수를 힘주어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2차 지점장 면접은 지점장이 보험 영업에 대한 소개를 하는 세션에 참가하는 모습을 본 후, 지점장이 면접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나는 무리 없이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사실 이 바닥이 대부분 그렇다.
지점장과의 면접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를 응시하던 삼성출신의 날카로운 턱선을 가진 지점장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기억한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니 팀장 선배가 조만간 연락을 주겠다며 잘 돌아가라 했다. 나와서 두근두근한 마음을 달래며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팀장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호기야, 지금 지하철역 아직 못 갔지? 지점장님께서 지금 바로 좀 다시 보자고 하시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발걸음 돌려 다시 지점에 올라갔다. 지점장님이 세상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원래 일부러라도 일주일 정도 뒤에 연락을 드리는데요, 너무 훌륭한 후보자를 만나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바로 이렇게 합격 소식을 전달하고자 부르게 되었습니다”
오글거린다. 너무.
그런데 그 당시 어린 내게 상당히 갚진 경험이 되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의 자존감을 이렇게 높일 수 있다니! 앞으로 항상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일하는 것인가! 가슴속에 불 같은 열정이 미친 듯이 솟아 올랐다. 팀장 형님과 내려와 선릉역 뒷골목 치킨뱅이에서 맥주 500cc 20잔을 연거푸 들이키고야 뜨거운 가슴이 진정이 됐다.
사실, 진실을 내가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날 빨리 불러 합격 시킨 것은 다음 본부장님 면접 일정이 정해져 있어서 나를 빨리 끼워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푸핫. 그래도 어쨌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