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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셋증후군 May 19. 2024

11. 넌 우리 편이 아닌 것 같아

제3장 자기소개서(1) 경험중심으로 기술

넌 우리 편이 아닌 것 같아 


퇴사 면담에서 본부장이 나에게 말했다. 

“넌 우리편이 아닌 것 같아”


자, 내가 어떻게 너희 편이 될 없었는지 이제부터 설명을 해드리겠다. 여기서 아마 우리 편은 사장 – 본부장 – 팀장으로 이어지는 라인이었을 것이다. 


우선 팀장은 입사할 때부터 나를 본인이 뽑지 않았다는 티를 풀풀냈다. 나를 면접한 후에 채용한 팀장은 내가 입사하기 전 급 퇴사하시고 새로 팀원이던 이 분이 팀장이 됐다. 나보다 세 살 많은 차장이었다. 나는 세 살 차이인데 대리로 입사했다. 전 직장에서 과장이었는데 무슨 생각으로 대리로 입사했는지, 실수다. 


첫 번째 평가 때 내게 말했다. 

“새로 오자마자 A받으면 주위에서 욕먹어, 나도 엄청 욕먹었어. 나는 A주고 싶은데, 그냥 좀 그러니까 B받어” 

“네, 내년에 과장 다는 것으로 구두 합의하고 왔으니까 그것만 챙겨줘요” 

이렇게 매우 공정한 평가를 마쳤다. 


두 번째 평가 때 내게 말했다. 

“B야” 

“왜요?” 

“그냥 B야” 

“그래요 그럼” 


그리고 승진이 되지 않았고, 세 번째 평가에서도 B를 받았다. 팀장은 내가 뭐라 할까 싶어 내 눈치나 보고 도망 다녔다. 


같은 팀 친구들과 이 사건에 대해서 얘길 많이 했다. 팀장이 항상 이상하지만, 유독 나한테만 더 불합리하게 군다는 것이다. 술자리만 생기면 이 얘기가 나왔는데, 결론은 팀 내에 본인 자리를 노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미리 견제하고 있다는 것으로 내렸다. 이게 말이 되나? 난 대리고 넌 차장인데? 


본부장은 대표와 함께 모 그룹사에서 오신 분이었다. 본인은 고졸이지만 서울대 출신만 채용하고 싶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 최고경영자 과정까지 나오셨던 것으로 안다. 대표와는 오래 함께 근무했던 것 같은데, 대표는 그 옛날 유학까지 가서 석박사를 해온 슈퍼 금수저였다. 그래서 본부장은 항상 대표에게 뭔가 눌려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업무 역량은 정말 대단했다. 기획실 업무에 대해 4~5시간 그 자리에서 강의가 가능했다. 기억나는 그 분의 명언 중에 이런 것도 있다. 


“어느 놈이 사업하면서 법을 지키나? 법은 뛰어 넘으라고 있는 거야!”  


내가 퇴사한다고 하니 면담을 하자고 했다. 마지막 날이니 본인이 커피 한잔을 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맥심을 타줬다. 내게 이렇게 따뜻하게 조언해주셨다. 


“내가 보기엔 넌 우리 편이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승진도 안 시킨 거야. 윗사람에게 네가 그 사람 편이라고 확실하게 인식시켜 줘야지 왜 애매하게 굴어. 다음 회사 가면 거기서는 잘 하란 말이야” 


그 당시 본부장은 직장생활 34년차 정도였던 것 같다. 그 정도 연륜의 선배가 얘기하면 들어야 하는 건가? 팀장이 나에 대해 험담한 것만 듣고 따뜻한 조언을 해주시고 있는 것 같은데, 직장 생활 그렇게 오래해도 균형감은 못 배우셨나? 내가 지금까지 치사하게는 살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인데, 살기 위해 라인이나 잡으라고? 그걸 철학이라고 후배한테 설파하는 것인가? 본인 아들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라고 들었는데, 한국에 오면 ‘머슴 되는 법’ 강의라도 해줄 건가? 아니지, 본인처럼 살지 말라고 현지에서 취업하라고 하겠지. 그런데 나는 왜? 나 무시하냐? 


사장은 경영계의 슈퍼스타였다. 잠시 학계에 가셨던 것을 회사에서 모셔왔다. 나이가 꽤 많으신 분이었는데 금수저 티가 많이 났다. 공부도 많이 하시고 경험도 상당히 풍부하셨다. 그때그때 회사를 위해 헌신하며 수 많은 사업을 일궈내신 분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냥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일 뿐이었다. 말꼬리 잡는데 선수였고 내가 한 말을 왜곡해서 바보 만들기에 달인이었다. 예전에 와튼 출신 분과 교육 프로그램 내에서 말싸움을 한 적이 있는데, 완전 불리한 상황에서도 지지 않았다. 이 분도 그런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 세 사람 모두 그 회사에 계시지 않는다. 내가 퇴사한 후 곧 다들 집에 가게 되셨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도대체 누가 누구 편을 들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본인들이 오만해서 회사 편을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나는 자기들 편이 아닌 것 같다고 했고, 그렇게 또 한 회사와 작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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