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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셋증후군 May 19. 2024

12. 나 왜 안 챙깁니까

제3장 자기소개서(1) 경험중심으로 기술

나 왜 안 챙깁니까 


울 팀 대리가 육아휴직를 떠나며 내게 말했다. 

“나 왜 안 챙깁니까” 


회사를 다닐 때는 무엇보다도 고용안정성이 중요하다. 당시 나도 그렇고 대리도 정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고용불안정을 겪고 있었다. 나도 하루하루가 허덕거리는데 후임이라도 챙길 여유가 도저히 없었다. 새로운 실장이 오고 나서 연일 털리던 때라 둘 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새로 온 실장은 나보다 대리를 더 갈궜다. 그 정도로 갈구면 나는 한번 들이박고 바로 퇴사했을 텐데 이 녀석은 회사에 대한 애착과 인내심으로 버티다가 육아휴직 카드를 꺼냈다. 


속셈은 ‘저런 인격의 인간이면 6개월 뒤 육아휴직 마치고 오면 사라지고 없겠지’였던 것 같다. 글쎄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닐 텐데. 조촐한 환송회를 하던 도중에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자 뭔가 치밀어 올랐는지 버럭 화를 내면서 본인을 왜 챙기지 않느냐고 내게 말했다. 너도 알잖아, 나도 죽겠다 진짜. 


솔직히 그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대리는 실장의 모든 것을 부정했다. 자료를 수정해줘도 어떤 조언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에게도 실장이 옳은지 본인이 옳은지 종종 물어봤다. 나는 ‘이 정도로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주면 네가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말해줬다. 전혀 듣지 않았다. 이슈를 돌파할 때 정공법을 택하지 않았다. 떠나는 대리에게 나도 화내고 싶었다. ‘왜 나만 두고 가버리냐’고. 


육아휴직 6개월은 금새 지나갔다. 대리는 복귀하자마자 곧 퇴사했다. 복귀해 잠시 같이 있을 때 여기저기 면접 제의가 오면 내게 의견을 물었다. 그 중에 대기업도 있었는데 대리에게 대기업 근무 경험을 쌓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시스템을 갖춘 조직에서는 어떻게 일하는지, 본인과 맞을지 판단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아마도 꽤 사랑 받는 직원이 됐으리라 생각하는데, 본인은 별로 내켜 하지 않았다. 


대리는 실무 역량보다는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매력과 장점을 가지고 있어 그 점이 항상 부러웠다. 그런 장점을 알아주는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역시 좋은 사람들을 만나 금새 정착했다. 직급도, 연봉도 수직 상승했다고 한다. 지금도 신규 사업을 시작하는 회사에서 중책을 맡아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때 내가 더 노력했어야 하는데 미안하고, 너 잘되면 나 좀 챙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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