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바른샘어린이도서관 모야의 오른손 '핏치'
모야에서는 작은손들을 만나는 작업실의 운영자들을 '오른손'이라 부릅니다. 오른손들은 어린이들의 좋은 동료이자, 작업실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숨은 주역입니다. 그래서 오른손이 어떤 분인지에 따라 모야의 색깔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모야 브런치 매거진에서는, 작은손을 만나는 애정과 철학을 가지고 모야를 생기있게 만들어가고 계시는 세 분의 오른손 인터뷰를 차례로 발행합니다.
그 첫번째 주인공은 수원 바른샘어린이도서관의 모야 운영자, '핏치'라는 별명의 진달미 선생님입니다. 바른샘 어린이도서관 모야는 오픈 이래 어린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공간인데요, 공간을 방문해 라이브를 진행했을 때 어린이들과 상호작용하는 오른손의 남다른 내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이후에 제일 먼저 인터뷰를 요청드렸답니다.
바른샘 모야 공간 소개 라이브 영상 보러가기
인터뷰를 통해, '제3의 어른'으로서 어린이를 만나는 기쁨과 애정의 마음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
Q. 핏치,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떻게 모야에서 일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미술을 전공해서 대학 때부터 미술학원에서 일을 해왔어요. 아동미술부터 초,중,고, 성인취미까지 다 가르쳐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후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재직하여 전시기획 및 운영을 도맡아 하였고요, 철학을 복수전공으로 공부하면서 미술평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꾸준히 글(미술평, 전시서문, 작가론 등)을 쓰고 있지요. 철학을 공부한 것은 모야에서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아무래도 편견을 깨뜨리는 사고 훈련을 한 상태에서 어린이들을 마주하게 된 것이 좋았던 것 같아요. 바른샘도서관에는 올해 2월 말 입사하여 3월부터 모야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사실 저는 수원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수원시민으로 자랐지만 도서관 환경과의 접점은 없었어요. 책도 거의 사서 읽는 편이었고요. 이렇게 도서관에서 일해보니 아무래도 책을 보러 오는 분들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 좋더라고요. 저도 마음껏 책을 빌릴 수 있고요.
Q. 이런 모야와 같은 공간이 도서관 안에 있는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도서관 안에 있는게 아주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도서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마음에 부담이 없는 것 같아요. 책과 연결될 수 있는 매커니즘이 자연스럽게 자리잡혀 있기 때문에, 이런 환경을 시민들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고요. 학부모님들도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게다가 비용이 들지 않고 부모님도 아이들도 기다리면서 책을 읽을 수 있죠. 아이들은 공공장소 매너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어요. 모야가 들어오면서 도서관 접근성의 장벽이 낮아졌다고 저희 내부에서 많이 이야기가 나와요. 부담감 없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확장되어서 좋은 것 같아요. 도서관 바로 근처 원천초등학교의 입지, 동네 아이들, 학부모님들의 성향까지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Q. 기존 도서관의 프로그램이나 만들기 활동과 모야의 다른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른샘어린이도서관의 프로그램은 제가 기획하지 않아서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 지켜보았을 때 도서관 프로그램은 일정 기간이 정해져있거나 단발성이라면 모야는 도서관 내에 항시 상주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지요. 도서관 프로그램은 학부모가 신청을 한다면, 모야는 학부모의 의사보다 아이들 스스로의 자발성을 중심으로 운영이 됩니다. 그러니 아이들의 태도에도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은 물론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촉진 가능하지만, 모야에는 좀 더 자연스러움이 있어요. 스스로 탐색하고 생각하면서 만들어내려고 하고, 천천히 시간을 써서 원리를 익히고... 그런 게 차별점이 아닐까 싶네요.
Q. 모야 오른손으로서 나만의 노하우(혹은 철학)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켜봐주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는 스스로 행동하기 전까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기본적인 모야의 시스템과 작은손 약속에 대해 설명해 준 후, 기다려줍니다. 물론 아이들의 성향을 살펴본 후 각자 다르게 접근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이 최대한 제한 받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제 입장보다도 아이들의 입장에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보아야 하고 아이들을 많이 관찰하고 대화 나누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어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살아온 경향이 큰데요, 모야에서 그 모드가 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내가 다가가기 보다는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왔으면 좋겠고요. 그러려면 지켜봐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적응의 시간을 주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바로 저에게 의존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기도 해요. 공간 안에 어른이 있는 것만으로 어린이들은 안심할 수 있으니, 바로 다가가기 보다는 조금 기다려도 된다고 생각해요.
또,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모야의 모든 도구 사용이 안전해야 합니다. 어른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아이들에겐 아직 학습되지 않아서 당연하지 않고 잘 모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작업반장 테이블 사용시 많은 설명을 해주고 당부, 또 당부 해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단순히 도구와 사용자의 관계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을 친구들, 도구, 재료에 대해서도 ‘이럴 경우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해줍니다. 안전불감증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말로 설명하고 권유하기 보다는) 오른손이 직접 행동합니다. 아이들이 어른의 거울이라는 것을 모야에 와서 더 확실히 느껴요. 공간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만들기 할 수 있도록 알려주고 지켜봐주는 것 뿐만 아니라, 더 재밌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깨닫게 된 방법이에요. 새로운 재료가 들어오면 그 재료로 제가 무엇인가를 만듭니다. 이번달에 명절, 할로윈데이, 크리스마스 등 행사가 있으면 그와 관련된 것들을 제가 만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제가 무엇을 만드는지에 대해 궁금하여 다가오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면서 만들기의 방식이나 완성도 등이 달라지게 되더라고요. 사실, 어느날 만들기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핏치도 한번 해봐요!" 해서 같이 만들게 된 게 시작이었어요. 그렇게 만들게 된 것을 뒷타임에 들어온 아이들이 보게 된 거죠. 그러니까 그걸 중심으로 대화가 이어지면서, "이건 앞타임의 OO가 나한테 알려준거야" 말해주게 되고. 작업의 연장선으로서 유대관계 속에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장면이에요. 저는 이게 모야의 정체성이라 생각해요. 모야에서는 순서가 없어요. 아이들만으로 이루어진 공간도 아니고 제가 하자는대로 하는 공간도 아니고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 당연히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게 자연스러워지는 것이죠.
우리 어린이들이 자랑스러운 이유가, '핏치가 화장실 가고 물을 떠오고 싶다'고 하면 아이들이 각자가 스스로 자기 작업상황과 안전상황을 이야기해주면서 다녀오라고 해요. "핏치, 저는 지금 여기까지 했어요." "지금 저는 글루건 필요없어요. 작업반장 테이블 안 쓰고 있을 거에요" 등등. 처음에 왔을 때 어린이들에게 불명확하게 하지 않고 설명을 정확하게, 많이 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스스로 할 수 있어요. 1~6학년끼리 섞여있어도 안전하고요. 저와 일요일에 운영해주시는 니모쌤, 그리고 주임님이 함께 작업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요, 주로 제가 작업실 관련 논의에 기준과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세 명의 팀워크가 잘 맞고 기준 적용이 공통적이어야 아이들도 혼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모야에서는 과정이 중요하고,
아이들의 생각이 중요하죠.
처음부터 스스로 책임을 지고 오는 곳이고,
그러니 다시 올 수밖에 없고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인정하게 돼요.
그 생각이 너무나 기특하죠.
저는 그걸 바탕으로 기록을 남기고,
부모님들이 확인을 요청하거나
궁금해하실 때 그 과정을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모야라는 공간이기에 가능한 부분이에요.
Q. 모야에서 배운 것, 얻은 것,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모야에서는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들이 많아요. 모야를 통해 어른과 아이를 보는 생각의 장벽이 많이 무너졌습니다. 모야라는 공간에서 아이들과 제가 평등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됩니다. 모야에서는 아이들이 어른에게 가르쳐줄 수도 있고, 어른이 아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러한 판을 만드는 주체가 작은손 친구들이고 그 친구들이 스스로 다른 친구들과의 소통을 나눌수 있는 공간이 모야입니다. 모야에서만큼은 작은손 친구들이 학원 걱정도, 친구관계 걱정도, 가족 걱정도 잊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길 소망하고 제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크게 어려운 점은 없고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야에서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이전에 미술학원에서 일하면서 가르쳤던 아이들에게 미안했어요. 아카데미의 시스템에 나 또한 길들여져서, 아이들을 극한으로 몰았던 게 스쳐지나가더라고요. 그 때 학원에서 저를 괴롭게 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싶었어요. 지금도 미술학원 동기들 만나면 제 생각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게 돼요. 이전에 일할 때는 결과가 중요했어요. 보여지는 것이 중요했고.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자유표현을 하더라도 선생님이 생각하는 완성의 기준이 있다보니 그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 저의 생각과 능력이 개입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다보니 아이들은 자기만의 성취를 맛보기 힘들었죠. 마무리를 자기가 못하면 책임감을 가질 수 없게 되잖아요. 그런데 모야에서는 과정이 중요하고, 아이들의 생각이 중요하죠. 처음부터 스스로 책임을 지고 오는 곳이고, 그러니 다시 올 수밖에 없고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인정하게 돼요. 그 생각이 너무나 기특하죠. 저는 그걸 바탕으로 기록을 남기고, 학부모 분들이 확인을 요청하고 궁금해할 때 그 과정을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정말 모야라는 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이에요. 저는 미술학원에 오래 있었지만, 모야 전에는 아이들이 마음 편히 만들면서 놀 수 있는 공간을 어디서도 본 적이 없어요.
아이들은 자기들이 만든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만들 때 자기의 일상을 마구 이야기하지요. 어른이라는 존재가 그런 창구면 된다고 생각해요. 들어주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제가 엄마라면 모야를 하기 전과 후의 제가 완전히 다를 것이라 생각되네요.
Q. 모야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어린이와의 만남이 있을까요?
너무너무 많습니다. 모야에서 처음 일했을때는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만들기라거나, 아이디어에 놀랐었는데 지금은 그것과 더불어 아이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서 놀랄 때가 많아요. 최근에는 작은손들이 작업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핏치, 우리들끼리 하는 말이 있는데요.
다들 뭐라는 줄 알아요?"
"뭔데?"
"애들이 이 다음에 크면 핏치가 되고 싶대요.
그래야 모야 맨날 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의 생각이 정말 사랑스러웠고, 아이들에게 오른손의 존재가 어떤지, 모야라는 공간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에요.
반면에 안타까워서 인상에 깊었던 친구도 있습니다. 12살인 친구였는데 항상 엄마와 함께 오곤 합니다. 그런데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입장하고, 입장하고 나서도 엄마의 개입이 많이 있는 친구여서 기억에 남습니다. 그 친구는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은데 엄마가 중간중간 오셔서 “OO야, 뭐 만들고 있어? 이번엔 새로운 재료 좀 써보는건 어때? 동생 것도 만들어줘야지~”등등 하고 개입을 하세요. 엄마가 사라지자 그 친구가 “저는 이거 하고 싶은데 동생 거 만들어야 해서 다른 걸로 만들어야해요”라고 하는데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그게 한 두 번이 아니라 올 때마다 거의 매번이어서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고 안타까웠어요. 아이들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지금은 많은 요령이 생겨서 다른 작은손 친구들과 함께 좋은 상황들을 만들려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학부모님의 개입이 들어올 경우가 가장 어려운 상황인 것 같아요. 가끔은 안에 들어온 작은손의 만들기 숙제가 무엇이니 도와달라고 저에게 이야기를 하시기도 하거든요. 반면에, 반대로 아이들이 스스로 어른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해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모야에는 어른 들어오면 안되는데, 엄마 거기서 그렇게 나 부르면 다른 친구들도 만들기하는데 집중 깨져서 그러면 안돼. 모야에선 우선 내가 하고싶은 걸 만드는거야, 모야는 자유야~ ”이렇게 직접 말을 하며 스스로의 자발성을 확인시켜주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Q. 모야에서 더 일어났으면 하는 작업의 내용이나 장면이 있을까요?
니모쌤, 주임님과 회의를 통해 '이달의 꼼지락 재료'라는 이름으로 두 달에 1번 정도로 계절감이 있는 재료, 모야에서 안써본 재료를 한 달에 한 번씩 조명해주는 실험을 하고 있어요. 노끈, 털실류 등도 해보았고, 가을 낙엽 등을 고려해보기도 했고요. 저는 계절과 자연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여름에 물을 활용해서 실험해보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하고있고 생각보다 흙 만지는 걸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흙으로도 많이 놀아봤으면 좋겠고요. 자연재료, 자연환경과의 만남에 관심이 많아서 저번에 어떤 아이들이 꽃이나 나뭇가지로 활을 만든 적이 있는데 정말 칭찬해줬어요. 작업이 놀이로서 일어나는 부분을 확인해보고 싶어요.
Q. 모야를 통해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모야를 통해서 저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바는 초심을 잃지 않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할 수 있길,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잘 지켜낼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 작은손들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잘 해내기 때문에 오른손이 아이들을 향한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아이들이 바른샘 도서관의 모야를 어떠한 공간으로 느끼길 원하나요?
해보고 싶은 걸 현실화 시키는 곳이요. 사실 이건 어린이들이 직접 이야기해준 거에요. "모야에서는 안되는 게 없잖아요. 없는 게 없어요. 모야에 오면 너무 재밌어요!"라고 해요. 그것이 '리얼'한 어린이들의 반응이고, 그게 모야에요. 앞으로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그걸 지키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 및 정리 : 민지은 (도서문화재단 씨앗 모야 프로젝트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