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든 첫 번째 교과서

역사를 통해 배운 사랑

by 민힐러

내가 처음으로 역사를 제대로 마주했던 건 중학교 한국사 시간이었다.

그때 처음 배운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는 어린 내 마음에 깊은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은 어린 나를 분노하게 만들었고, 나는 그때 일본을 미워했다.

친구들과 일본에 대해 이야기하며 울분을 쏟아내고,

‘공부해서 복수하겠다’는 다짐을 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역사를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미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의 마음은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일본의 한 여고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다.


학생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홈스테이를 하고,

서로의 문화를 배우는 교류의 시간이 있었다.

우리 집에도 일본인 친구가 며칠 머물렀고,

나는 그 친구의 집에서 잠을 자며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을 함께 방문했다.


언어가 서툴러 깊은 대화는 나누지 못했지만,

그들의 따뜻한 미소와 정성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부모님도 서툰 영어로 친구를 맞이하며 정성껏 음식을 차려주셨다.


그 따뜻한 풍경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역사 속의 ‘일본’은 하나의 나라일 뿐,

그 안에도 나처럼 웃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 후로 일본은 내게 ‘적’이 아니라 ‘이웃’이 되었다.

대학교 시절엔 일본의 만화와 음악에 빠졌고,

그 문화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과 연약함을 보았다.


전쟁은 한쪽의 죄만이 아니라,

모두의 상처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역사는 미움을 배우는 과목이 아니라,

이해를 배우는 긴 시간의 대화라는 걸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이제는 나의 둘째 아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을 가장 좋아한다.

처음엔 잔혹한 장면들에 놀랐지만,

그 속에 담긴 스토리와 감정, 음악의 힘에 나도 금세 빠져들었다.


벌툰 만화카페에서 아들과 함께 책장을 넘기며,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는 다른 눈으로 일본을 보고 있었다.

그때의 분노는 사라지고, 대신 이해와 공감이 자리를 잡았다.


다음 달이면 둘째 아들과 함께 오사카와 나라로 여행을 간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과 고즈넉한 사찰의 풍경 속에서

아들과 함께 만화 이야기를 나누고,

전쟁의 기억이 아닌, 평화의 일상으로 이어지는 발걸음이 되기를 바라며,

과거의 상처 대신 현재의 따뜻함을 느끼고 싶다.


역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제 그것을 미움이 아닌 사랑으로 배우고 있다.

세상은 결국,

이해와 공감 위에서 조금씩 나아가는 것임을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나는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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