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외출하기 전에 미니 텃밭에 심은 딸기를 따 먹는다. 자연이 키운 원종 딸기라서 크기는 작지만 맛이 매우 부드럽고 달아서 한 주먹만큼 따 먹으면 포만감이 큰 편이다. 그런데 이날은 유독 딸기와 비슷해 보이는 열매 하나가 내 눈에 튄다. '뭐지' 하면서 손을 뻗어 끄집어내 보니 뱀딸기였다. 예전에 안 보이던 이 열매가 보이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식물의 지식 대부분은 故 이영문 선생님께 배운 것이지만, 선생님은 늘 간결하게 말씀하시는 특징을 가진 분이라서 글을 쓰는 데 영감은 주셔도 상세히 풀이해 주시진 않으셨다. 결국 선생님은 획일화된 교육 방식으로 고정된 뇌 회로에서 다양한 생각의 회로도를 여는 물꼬를 터주셨던 게 아닐까. 아마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훈련하셨던 것 같다.
그렇기에 처음에 그 의미를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그 속뜻을 읽어 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당장 알아차릴 수 있기도 하고, 좀 시간이 흐른 뒤에 깨닫기도 하고...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느끼면서 알게 되기도 한다.
서론이 길었는데, 뱀딸기 잎은 딸기 잎과 유사해, 열매가 열리기 전까지 딸기 잎과 함께 산다. 뱀딸기는 자신이 안전하게 살아갈 시간을 번다. 딸기 작물은 사람이 애지중지하며 키우니 자라남에 있어 위협에 덜 노출된다. 그러나 자생초(잡초)는 작물과 다르다.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써야 한다. 중심 작물인 딸기 잎과 비슷하게 잎을 내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식물이 가면을 쓴다는 건 생존 수단이다. 사람 눈에 덜 띄어야만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도 열매가 열리고 난 후에야 아니란 걸 알았으니깐. 가면을 쓴 식물이 많은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생태 환경에서만 보이는 식물 형태이니 가면을 쓴 식물들이 생겨난 건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식물이 가면을 쓰듯 사람들도 가면을 쓴다. 생존을 위해 또는 이익을 위해 또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선한 가면도 있을 테고 거짓 가면도 있겠지.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오묘한 가면들이 존재한다. 그에 반해 식물의 가면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식물은 자신을 변형하지 적어도 왜곡하지는 않으니깐 말이다.
식물의 가면을 알아보듯 사람의 거짓된 가면도 알아볼 수 있는 슬기로움을 갖춰 사람 속을 꿰뚫어 보면 주위에 사람이 없겠지. 적당히 때 묻고, 적당히 비위 맞추며 살아야 세상 속에 어울리는 사람일까. 맑은 물에 물고기는 살지 못한다는 속담처럼 맑은 물에는 왜 물고기가 안 사는 걸까. 맑은 물속에 사는 물고기와 어울리는 게 지금 세상에 꿈같은 이야기인 걸까. 오늘은 마침표를 찍는 문장보단 물음표를 남기는 문장을 늘여 틀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