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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희 Jun 21. 2021

닐스야드 데어리 코벤트가든 LONDON


유럽에 사는 오랜 지인이 런던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치즈가게가 있다고 했다. 닐스…… 뭐라고 했는데, 어릴 적 봤던 〈닐스의 모험〉이라는 만화 때문에 앞 두 글자만 겨우 기억나는 곳이었다. 이 치즈가게의 본래 이름은 ‘닐스 야드 데어리NEAL'S YARD DAIRY’로, 야드라는 단어 때문에 그 만화에서처럼 마당에 거위가 돌아다니는 시골의 치즈가게가 연상되었다. 마당이 있는 치즈가게라니!! 하지만 그건 런던 중심가에서 그저 기분 좋은 상상일 뿐이었다.


 닐스야드 데어리에 가기 위해 내린 코벤트가든 지하철역 앞은 말할 것도 없이 복잡했다. 최고의 여행 시기답게 겨우 걸을 수 있을 만큼 관광객이 넘쳤고 한여름의 햇볕은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따가웠다. 길 건너편엔 거대한 식료품점 막스앤스펜서Marks&Spencer가 우뚝 서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음식을 사 들고 나와 어디론가 빠르게 흩어졌다. 그 화려한 건물 옆으로 반들반들하게 깔린 보도블록을 따라 닐 스트리트Neal Street라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입구만 좁았을 뿐 사방으로 연결된 골목들 사이로 유명 브랜드의 가게들과 작은 광장까지 끝도 없을 것 같은 쇼핑거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길이 조금 한가해질 즈음 아주 작고 얌전하게 생긴 치즈가게가 예고도 없이 나타났다.

코발트블루의 간판이 걸린 닐스야드 데어리는 가게 전면이 투명한 유리창이어서 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선반에 쌓여 있는 나무토막처럼 생긴 갈색 치즈들 뿐 이었다. 데어리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간판 이 없다면 무얼 파는지 도통 알 수 없을 것 같다. 출입문이라도 활짝 열어두면 좋으련만, 굳건히 닫힌 문은 열기가 망설여질 정도였다.     

-똑같이 생긴 치즈들에 여러 제조 농장의 이름표가 붙어 있다.-

 

“안녕하세요.”

가게에 발을 들여놓으며 빼꼼 인사를 했다. 두어 명이 서 있기에도 벅찰 만큼 폭이 좁고 긴 공간에 선반과 벽 가득 치즈가 쌓여 있었고 습하고도 차가운 공기가 팔 위로 내려앉았다. 은은한 오렌지 빛깔의 전등, 일일이 손으로 쓴 치즈에 대한 작은 메모판, 가게 안쪽 끝까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다양한 치즈들……. 한 모퉁이의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만이 음악소리 하나 없는 적막함을 메우고 있었다. 내 앞에 서 있던 30대 여성이 치즈를 사 가고 비로소 내 차례가 되자 점원이 내게 눈인사를 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뭘 물어봐야 하나…….  특별히 치즈를 사러 온 것도 아닌 데다 도대체 흐름을 알아볼 수 없는 영국 치즈에 적잖이 당황한 나는 건넬 말을 찾지 못했다. 앞의 손님이 치즈를 사는 동안 둘러보고 또 둘러봐도 나무토막 같은 치즈의 정체가 파악되지 않았다. 진열되어 있는 작은 치즈들의 이름도 전부 생소했다. 그나마 겨우 알아볼 수 있었던 건 브리Brie였지만 그건 프랑스 치즈다. 그런데 메모판에는 생산 지역이 (프랑스가 아닌) 영국 남서부의 서머싯Somerset이라고 쓰여 있었다.

무엇보다 가게 한쪽에서 물줄기를 뿌리고 있는 샤워기에 눈이 갔다. 습도 조절용으로 놓은 듯했지만 이제까지 다녔던 치즈가게들은 물론 농장에서조차 보지 못한 것이었다. 전에는 한여름에 치즈 여행을 다닌 적이 없어서였을까? 영국보다 적어도 10도는 더 높았던 스페인에서도 저런 형태의 가습기를 본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눈동자만 굴리다 눈이 마주친 점원은 내가 무언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맞다. 영어가 통하는 곳이지, 영어가 통하는 곳이야 겁낼 것 없어.’라는 생각이 들자 쓸데없는 첫 마디가 툭 튀어나와버렸다.

“음, 저 떨어지는 물줄기는 뭔가요?”

“습도 조절용이에요.”

아, 하는 감탄과 함께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였지만 실은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그랬을 뿐이었다.

“사실 전 치즈에 관해 글을 쓰려고 왔어요. 혹시 런던 근교에 가볼 만한 치즈 만드는 곳이 있을까요?”

순간적으로 나온 것은 너무도 생뚱맞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와 마주한 그녀는 서슴없이 누군가 가져가지 않은 영수증 뒷면에 어딘가의 주소를 적어주었다. 가볼 만한 치즈 제조소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이다.

 치즈도 사지 않고 계속 질문만 하는 게 미안했지만, 도통 감도 오지 않는 치즈를 덥석 살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다시 오겠노라고 말했다.

가게를 나오자 많은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보고 있어도 파악이 되지 않은 치즈 종류들, 찬 기운 가득한 가게 내부. 어떤 것도 내가 으레 예상했던 치즈가게의 모습과 들어맞지 않았다. 이탈리아 남부부터 프랑스 시골까지 정말이지 많은 치즈가게를 찾아다녔다. 영국 치즈라고 해서 새로울 것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곳은 새롭다 못해 내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생소한 곳이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영국의 치즈 자료를 찾으려 런던의 서점과 시장을 돌아다녔다. 그중 하나가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버러마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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