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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희 Jun 21. 2021

닐스야드 데어리 버러 마켓 LONDON

 버러 마켓 Borough Market


템즈강 남쪽에는 런던의 32개 자치구 중 가장 오래된 사우스워크 Southwark가 있다. 여기에 1014년에 개장해 1,000년이나 된 재래시장 버러 마켓 Borough Market이 있다. 그 오래전에는 넓은 공터에 상인들이 모여 시장이 섰겠지만, 지금 버러 마켓에서는 철제 기둥이며 천장의 구조물이 먼저 눈에 띈다. 1850년대에 완공된 이 건물은 1860년대에 장식예술 Art Deco을 추가했고 1932년 현재의 화려한 입구 장식이 다시 추가되었다.

버러 마켓은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이 함께 운영된다. 도매시장은 평일 새벽(오전 2시부터 오전 8시까지)에, 소매시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린다. 요일마다 문을 여는 상점의 수는 다르다. 월요일·화요일에는 상점들이 부분적으로만 열리기에 리미티드 마켓 Limited Market이라 불리며,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시장 전체가 다 열려 풀 마켓 Full Market이라 불린다. 일요일은 시장 전체가 휴무다.


 런던에서 식재료를 살펴보려면 버러 마켓으로 가라고 한다. 런던 브리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이곳은 런던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역사가 깊을 뿐 아니라 가장 큰 식료품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 시장이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것은 템즈강변이 런던 교역의 중심지였고, 1750년까지 템즈강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가 런던 브리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템즈강의 두 번째 다리는 1750년 11월 웨스트민스터 브리지다. 1739년부터 11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고 국회의사당과 빅벤을 볼 수 있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이후 30년간 런던시는 템즈강에 4개의 다리를 더 건설했다.

 

강에서는 배가, 도로에서는 말과 마차가 교통수단이던 중세 이전 시대부터 런던 브리지 근처에는 코치 스테이션이라고 불리는 말과 마차의 숙소가 많았기에 당연히 떠나는 사람들과 머무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이후 산업혁명(1700년대) 때 철로가 놓여 기차가 주된 교통수단으로 바뀌었음에도 말이 쉬어가는 코치 스테이션만 사라졌을 뿐 식당가나 숙소는 유지되었다.  현재 런던 브리지 역은 기차와 지하철의 복합 철도역으로 운영되어 여전히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버러 마켓으로 가기 위해 런던 브리지 지하철역에서 빠져나오니 교각이 도로까지 연결되어 고가도로 아래처럼 길이 어두웠다. 거기에 더해 인도는 좁고 사람은 많아 지나는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칠 정도였다. 사람들에 밀려 횡단보도 앞에 서자 머리 위에 있던 교각으로부터 벗어난 대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었다. 영국은 비가 많이 온다더니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비를 만난 적이 없었다.

 런던에서 가장 큰 식료품 시장답게, 버러 마켓에는 채소, 과일, 육류 같은 식재료를 판매하는 상점이 많았지만, 샌드위치나 구운 소시지, 케이크, 쿠키 등 점심 요기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파는 상점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장을 보는 사람들에 관광객, 거기다 점심을 해결하러 온 인근 직장인까지 몰려들어 사람들에 떠밀려 다닐 지경이 되었다. 어디든 한가한 곳으로 가려고 발을 옮기던 중 길 건너편에 익숙한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이 건물은 본래 마구간이었다고 한다. 1층은 말 쉼터로, 2층은 말에게 먹일 여물을 저장해두는 곳으로 사용했단다. 2층은 현재 치즈 수업 공간으로 활용한다.


“NEAL’S YARD DAIRY”

코벤트가든의 가게와 마찬가지로 짙은 파란색 간판을 마주하자 너무 놀라서 잠시 멈칫했다. 여기 있었구나! 그러지 않아도 시장에 들렀다가 찾아가려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찾게 된 것이다. 버러 마켓의 가게는 언뜻 보기에도 규모가 상당했다. 두 사람만 서 있어도 꽉 차던 코벤트가든 매장과는 비교도 안 될 크기였다. 엄청나게 큰 재래시장과 그 앞의 치즈 가게, 여행을 다니면 제일 먼저 찾아다니는 소중한 두 곳이 공존하는 사거리에 툭 떨어진 것처럼 내가 서 있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한 점원이 혹시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는 닐스야드 데어리 버러 마켓의 매니저 마이클이었다). 코벤트가든 매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와는 달리, 나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다.

“치즈를 보러 왔어요.”

  입구에서부터 쌓여 있는 엄청난 치즈의 양으로 보건대 이곳이 런던 치즈의 보고寶庫라는, 놓치면 안 될 장소라는 확신이 섰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제대로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나는 그간 치즈와 연관된 책을 썼고 이번엔 영국 치즈에 관해 쓰려고 취재 중이라고  마이클에게 천천히 설명했다. 그러자 마이클은 우선 상점을 둘러본 다음 원하는 것을 이야기해달라고 말했다.

매장 내부는 밖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첫 번째는 치즈를 비롯한 식품과 관련 용품을 살펴보고 구입하는 공간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계산대가 보이고, 그 뒤로 나무토막처럼 잘라놓은 체더치즈를 진열해놓은 선반이 있다. 그리고 양옆 벽으로 놓인 선반에는 치즈 관련 서적과 치즈로 요리할 때 사용되는 오일, 곁들이는 잼, 빵이 진열돼 있고, 수제 버터와 요거트가 가득 들어찬 냉장고도 있다. 매장의 넓이도 넓이려니와 판매하는 품목의 다양함에 압도당할 정도였다.  계산대 왼편으로 두 번째 공간이 펼쳐졌는데, 그곳에는 체더뿐 아니라 이곳에서 취급하는 모든 치즈가 진열되어 있다. 이 건물의 한 층은 여느 건물보다 반 층높이만큼 천장이 높았는데, 바닥부터 그 높은 천장까지 빼곡하게 짜인 나무 선반에 온갖 종류의 치즈가 쌓여 있었다. 코벤트가든 매장처럼 여기에도 오크통에 커다란 샤워기가 설치되어 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습도 유지가 잘 되는 덕분인지 차갑고도 축축한 공기가 피부 위로 내려앉는 느낌까지도 비슷했다.  


입구에 들어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치즈 골목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만큼 수 많은 치즈가 늘어서 있다.
세계3대 블루치즈인 스틸턴의 나라 답게 블루 치즈 코너가 따로 있다.

 이 건물은 본래 마구간이었다고 한다. 1층은 말 쉼터로, 2층은 말에게 먹일 여물을 저장해두는 곳으로 사용했단다. 말의 키만큼의 높이여야 했기에 천정이 그렇게 높은 것이었다. (2층은 현재 치즈 수업 공간으로 활용한다.) 말이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때 영국 전역에 수없이 많은 말 쉼터가 있었는데, 1800년도 중반 철도가 놓이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사라져 그 흔적만 남았고 그런 곳 중 하나가 치즈가게로 거듭난 것이다. 입구 역시 말이며 마차가 드나들 수 있는 거대한 나무문이다. 지금은 (어느 닐스야드 데어리에서도 볼 수 있는) 짙은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는 데다 치즈를 설명하는 글을 빼곡히 써서 문에 붙여 놓은 터라 마구간 시절의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나무문의 맨 윗부분에 50cm 정도 길이의 쇠창살을 한 뼘 간격으로 주르륵 꼽아둔 전형적인 옛 마구간 출입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사진 왼편, 파란문의 윗편에 쇠창살이 있는 마굿간의 흔적. 주말 이벤트로 치즈메이커가 직접 설명과 테이스팅 행사를 하는데 이보다 더 전문적 일 수 없다. 티클모어 데어리 벤헤리스.



10여 분 동안 매장을 돌아본 후 마이클에게 다가가 책에 쓸 사진을 찍고 싶은데, 직원들 얼굴이 나와도 괜찮은지 물었다. 그는 친절하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답했다. 마음이 좀 놓여 한 가지 더 부탁했다. **아마존에서 구입한 《진짜 치즈 안내서 The Real Cheese Companion》를 들이민 것이다. 구입할 당시 리뷰가 없어 망설였지만 목차를 보니 도움이 꽤 될 듯싶었다. 배송을 받아 보니 다행히도 영국의 치즈 농가를 지역별로 아주 상세히 정리해놓은 책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사진이 없다는 점이었다. 저자가 설명하는 치즈가 어떤 모양인지, 저자가 설명하는 제조 과정이 실제 어떻게 이뤄지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 이 책을 읽네요? 세라도 우리 단골이었어요.”

놀랍게도 《진짜 치즈 안내서》의 저자 세라 프리먼 Sarah Freeman이 닐스야드 데어리 단골이었다. 그녀가 단골이었던 치즈가게라니! 역시 현장은 현장이다 싶어 요즘도 오는지 물었더니 안타깝게도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단다.

“사진 한 장 없이 글자만 있는 책이라서 어떤 농장이 어떻게 생긴 치즈를 만드는지 알 수가 없어요.”

나는 마이클에게 책과 색연필을 내밀며 갈 만한 농장이 있다면 표시해달라고 부탁했다. 영국 치즈를 찾아 나서는 데 좋은 이정표가 되지 싶었다. 마이클은 농장 몇 군데에 표시해주면서, 그 농장들의 치즈를 여기서도 판매한다고 했다.

“이 책에 나온 농장의 치즈들이 여기 있다고요?”

“그럼요. 우린 농장에서 직접 치즈를 사 오니까요.”

다른 치즈가게들도 모두 농장에서 치즈를 사 온다. 다만 도매업체들이 공급을 해주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내가 마이클의 말에 놀란 건 책에서 설명된 치즈를 실물로 볼 수 있어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직접’ 치즈를 사 온다고 한 마이클의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닐스야드 데어리는 도매업체를 통해 치즈를 구입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단순 소매점이 아니다. 치즈를 생산하는 농가와 직거래를 해서 치즈를 구입하는 곳으로, 도매와 소매를 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치즈를 그만큼 많이 구입․유통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구입량이 많다고 농가와 직거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양한 치즈를 판단하는 안목, 대량․장기 유통이 가능한 기술과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마이클의 자부심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치즈에 관련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경우는 거의 없고, 한국에 정보가 알려진 저자도 거의 없다. 검색으로 겨우 찾아내야 하기에 치즈 자료를 구할  책의 리뷰도 없고 그저 미리 보기의  페이지와 목차만 참조해 구입하곤 한다. 그렇게 구한 책들이 치즈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경우가 많아서, 현지 농장이나 치즈 전문점에 들고 가면 희귀한 자료를 어떻게 구했냐며 반가워했던 일도 있었다. 책의 자료를 인용해 질문을 하면 내가 원하는 것도  명확하게 설명할  있고 도움을 받기도 수월해  책을  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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