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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희 Jun 29. 2021

닐스야드 데어리 버러 마켓 2 LONDON

NEAL’S YARD DAIRY LONDON


 다음 날 오후 2시, 사진 촬영을 위해 미리 약속해둔 시간에 맞춰 상점을 다시 찾았다. 치즈 가게가 가장 분주한 시간은 문을 여는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라고 했다. 이곳에서 치즈를 구입하는 중간 도매상들과 장을 보러 나오는 손님들이 몰리는 시간을 피해 마이클이 편하게 촬영할 수 있는 시간대를 잡아준 것이었다.

매장에 진열된 치즈는 그 종류와 양이 너무 많아 한눈에 안 들어올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계약한 치즈 농가가 40곳이나 되며 한 농장에서 두 종류의 치즈만 받아도 대략 100종을 보유하게 되니 말이다. 제한된 시간 안에 모든 치즈를 볼 수는 없으니, 이곳에 가장 많이 진열되어 있고 그간 제일 궁금했던 체더치즈에 집중하기로 했다.

체더 치즈, 체더와 비슷하지만 다른 하드 치즈들을 모아 둔 코너로 원하는 치즈를 원하는 양만큼 구입할 수 있다.

 

내가 영국 치즈의 대명사 체더치즈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만드는 방법이 독특해서였다. 일반적으로 단단한 계열의 치즈 Hard cheese는 숙성 기간 동안 소금물로 표면을 닦아낸다. 이렇게 하면 소금으로 인해 외피의 수분이 마르면서 두꺼운 껍질이 생겨나는데, 숙성이 진행될수록 더욱 견고 해지는 이 껍질은 오랜 발효 기간 동안 치즈의 보호막이 되어준다. 그런데 체더치즈는 이런 자연스러운 껍질이 생성되게 두지 않는다. 대신 만드는 과정 중에 치즈 겉면을 천으로 감싼다. ‘모슬린 muslin’(평직으로 짠 무명천)이라고 불리는 면직물인데, 이를 라드(Lard 돼지기름)를 이용해 치즈에 붙인다.


나는 이전까지 어디에서도 천에 싸인 치즈를 본 적이 없었다. 천을 치즈에 둘둘 감아두나? 그러면 치즈가 숨을 못 쉴 텐데, 숨을 못 쉬니 발효는 어떻게 진행되지? 모슬린 위로 소금물을 적셔주나? 라드를 사용한다는 것도 어떻게 치즈에 쓰인다는 것인지 책으로만 읽은 체더치즈의 모습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때문에 코벤트가든 매장에서 체더치즈를 처음 봤던 날, 칙칙한 빛깔에 통나무처럼 생긴 것이 아마도 체더치즈겠거니 어림짐작만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몽고메리 체더 Montgomery Cheddar, 킨스 체더 Keen's Cheddar, 퀵스데어리 체더 Quicks Dairy Cheddar, 웨스트콤브 체더 Westcomb Cheddar…….

체더 앞에 끝없이 다른 이름이 붙어 있었다. 체더치즈의 종류인지, 제조 농장의 이름을 표기한 것인지 보고 있어도 뭘 보고 있는지 분간이 안 되었다. 흡사 눈 뜬 장님이 된 기분이었다.  

  

닐스야드 데어리의 치즈 보관실 왼쪽 벽엔 바닥부터 천정까지 나무 선반이 짜여 있어 칸마다 자르지 않은 통치즈가 가득 채워져 있고 오른쪽 벽에는 작고 큰 치즈 수십 종류가 낮은 진열대에 늘어서 있다. 손님이 그중의 치즈를 고르면 직원이 바로 잘라 포장을 해주었다. 이 중 왼쪽에 쌓여 있는 치즈들은 원형 그대로였기에 직접 만져볼 수 있었는데 풀을 먹인 듯 까끌까끌한 모슬린이 치즈 표면에 단단히 붙어 있었다(잘라놓은 치즈는 위생상 만지면 안 되지만 원형 그대로의 치즈는 만져볼 수 있다. 천으로 싸여 있는 외피는 먹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단한 치즈들은 이렇게 천을 붙여 발효시키는 것이 영국 치즈의 특징이다. 이들 치즈에는 작은 종이로 된 라벨이 달려 있는데 여기에는 치즈 이름, 제조 농장, 치즈를 만든 날짜가 표기되어 있었다.

“아, 표면이 천으로 감싸 있어서 이렇게 종이를 매다는구나”


자연적인 껍질을 갖는 단단한 치즈들은 보통  표면에 단백질로 만든 라벨을 올린다. 이 라벨은 치즈의 수분이 닿으면 표면에 바로 녹아 붙는데 흡사 도장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이 라벨에는 제조 농장, 제조국, 제조일 등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어, 숙성이 끝나 시장에 팔려 나갈 때까지 치즈의 작은 소개증이 된다. 내가 본 치즈 중에서는 주로 프랑스와 스위스 농가에서 이 방법을 사용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완성된 치즈 표면에 불에 달군 쇠로 도장을 찍어 정보를 표기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치즈가 바로 파마산이라고 부르는 파르미자노 레지아노다. 하지만 모슬린으로 감싼 치즈는 이 방법을 쓸 수 없으니, 라벨을 이렇게 따로 달아두는 것이다.

모슬린에 싸여 있는 단단한 치즈들의 표면에는 이렇게 치즈의 신분증과 같은 라벨이 붙어있다. 라벨에는 치즈 이름,농장, 제조 날짜, 우유의 살균 혹은 비살균 등의 많은 정보가 있다.


모슬린에 싸인 단단한 치즈만 봤는데도 마이클이 내게 허락한 두 시간 중 한 시간이 숭덩 지나가버렸다. 아직 봐야 할 치즈가 런웨이만큼이나 기다란 진열대 위에 켜켜이 쌓여 있었다.

 나는 마이클에게 매장 지도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매장에 진열된 치즈의 이름도 정리하고, 내가 관찰한 것과 맞춰보기 위해서였다. 마이클은 내가 내민 노트에 매장 지도를 쓱쓱 그리더니 세척 외피 치즈, 수분이 가득한 비숙성 치즈, 염소젖 치즈, 지방별 치즈, 블루치즈, 그리고 벽에 진열된 치즈까지 전부 11구역으로 나뉜 치즈 진열대를 표시해주었다. 그리고 지도의 가운데에는 중요한 메모도 남겨주었다.

‘실내온도 14도, 습도 82퍼센트.’

그가 적어준 수치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촬영 내내 나는 이 매장엔  어떤 치즈가 있는지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이클은 내가 원하는 것뿐 아니라 동시에 내가 알아야 할 것을 짚어주었다. 치즈의 본질에 충실한 그에게는 치즈가 머무는 환경이 가장 중요한 정보였던 것이다. 그의 배려는 마지막까지 세심했다. 또한, 치즈를 둘러싼 환경이 얼마나 섬세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코벤트가든의 닐스야드 데어리에서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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