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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희 Jul 15. 2021

작은 치즈 박물관, 리펀 치즈
LONDON

RIPPON CHEESE  LONDON

비록 도심에 있는 치즈가게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지만, 내가 찾은 가게만큼은 아주 소박하고 촌스러웠으면 좋겠다. 찾느라 고생은 좀 하더라도 한적한 골목 뒤편에 있으면 

더 좋고, 나이 지긋한 주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리펀 치즈 Rippon Cheese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관광객이 넘치는 버킹엄 궁전과 가장 붐비는 빅토리아 기차역이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지만, 마침 리펀 치즈가게가 있는 거리만큼은 한적했다. 푸른 페인트로 칠한 외관이며 커다란 유리가 끼워진 나무문, 시골 상점처럼 발을 늘어뜨린 것까지, 세계에서 최고로 번잡한 도시 런던과는 분명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이곳은 런던의 레스토랑들 사이에서 유명한 치즈가게로, 특히 “블루치즈를 보려면 리펀으로 가라”고 할 만큼 정평이 나 있다. 런던에 사는 지인이 직접 알려준 곳인데, 요리를 하는 사람이 추천한 곳이라 꼭 보고 싶었다.


필립 리펀 Philip Rippon과 아내 캐런 카렌 리펀 Karen Rippon이 근처 치즈가게에서 일하던 경험을 살려 1990년에 문을 열어, 현재는 총 500종의 치즈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저는 한국에서 왔는데, 런던의 치즈가게들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혹시 편하신 시간에 촬영을 할 수 있을까요?”

내 조심스러운 요청이 끝나기도 전에 캐런 아주머니는 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런던에서는 유럽의 다른 도시들보다 치즈가게 찾기가 어려웠다. 동네 시장 골목만 들어서도 두어 곳 이상의 치즈가게가 늘어선 프랑스처럼 많기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검색으로 겨우 몇 곳만 찾을 수 있었다. 대신 곳곳에 있는 슈퍼마켓 체인점 막스 앤 스펜서 M&S, 웨이트로즈 Waitrose 등에 치즈 코너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었다. 완제품으로 포장되어 판매되는 냉장 코너와 자연 치즈를 쌓아두고 직원이 원하는 만큼 직접 잘라주는 코너가 따로 있어서 쉽게 치즈를 구입할 순 있지만 치즈에 관해 대화하기엔 치즈가게만큼 자유롭지 못했다.


촬영을 약속한 날 오전 10시, 캐런 아주머니는 정말이지 좋아 죽겠다는 얼굴로 두 손을 바짝 움켜쥐곤 말했다.

 “촬영은 조금 이따 해요. 버킹엄이 바로 앞인데 정말 안 갈 거예요?”

전 날 영국 전역을 들뜨게 만든 로열 베이비**가 태어났기에 버킹엄 궁에 모인 시민들의 환호가 치즈가게로 걸어오는 내내 온 도시에 울려댔다.

“전 한가할 때 치즈를 좀 더 봐 두고 싶어요.”

같이 가고 싶은 마음에 발뒤꿈치가 살짝 들리기도 했지만, 어린 왕자의 탄생은 좋은 분위기에서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만으로 내게 충분한 행운이었다.


리펀은 밖에서 들여다보면 치즈가 보이지 않는 치즈 가게다. 매장의 크기가 겨우 두 평 남짓인 데다 진열되어 있는 상품이라곤 겨우 몇 가지 잼과 과자뿐이어서, 모르고 들어서면 소박한 식료품점으로 오해할 모습이다. 치즈는 매장 내부에 있는 유리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저장고에 따로 보관되어 있고, 잼과 과자가 있는 공간은 저장고에서 가지고 나온 치즈를 잘라주거나, 계산하거나, 전화 주문을 받는 작은 사무실이었다.

캐런 아주머니가 분위기를 띄워놓고 간 덕분에 얼굴을 마주한 지 5분밖에 안 된 매니저 루크와 나의 서먹함은 어깨를 한 번 들썩이며 웃는 것으로 곧 풀렸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증손이자 윌리엄 왕세손의 첫 아이이자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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