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관대하다
야야야~ 내나이가 어때서~ 일단 노래 한 번 불러보고.
스물아홉살이었던 그가 몸을 떠나고 13년이 흘렀다.
그때 나는 스물일곱. 이제 마흔이 되었다.
몸을 떠나면 그 나이로 계속 기억이 된다.
그가 지금 살아 있다면 마흔둘. 어떨까 전혀 상상이 안된다.
아빠의 나이를 처음 지각 했을 때가 마흔둘이었다.
그래서 마흔 둘은 아빠 나이로 분류가 된다.
13여년간 누구를 좋아하거나 했지만
결혼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내가 마흔 즈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서였다.
나 스스로 정해놓은 데드라인(?)이런거.
그래서 그 전에 독자적으로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았다.
여한없이.
다행스럽게
행운이 내게 와서 나는 꽤 건강한 몸으로 살아있었다.
그래서 보너스로 사는 인생 같다는 생각이들어
더 즐겁게 살기 위해
소개를 받기도 하고 만나보게도 되었는데
대부분 마흔이 넘은 남성들이었다.
나의 분류기호로는 아빠 나이.
미혼의 사십대는 많은 이해와 탐사가 필요했다.
숫자로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가치관들과 생각들.
내가 생각했던 아빠 나이는 허상이었다.
기대는 내려놓고 명확한 기준점을 탐사하는 게
현명함을 배워간다.
게다가 나는 어떤가 마흔이 아닌가.
서로 성숙을 담보하고 있지 않음을
만들어가는 미성숙체라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했다.
아 쓰다.
이제 본격 연말이다.
내년엔 좀 더 너그러이 마흔 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내년을 더 많이 사랑해보기로 따뜻한 눈길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