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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희 Dec 22. 2016

[인터뷰 기사]스님과 시인, 인생을 이야기하다 1

우먼센스 2009년 10월 인터뷰


전주 한옥마을에서 만난 김용택 시인과 도법스님  

평생을 고향을 지키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글을 쓴 김용택 시인과 생명평화를 이야기하며 전국을 걸어서 순례를 마친 도법 스님. 가을빛 머플러를 두르고 가벼운 걸음으로 나타난 두 ‘선지식’들을 지난 10월 18일 전주 한옥마을에 만났다. 

하늘은 높고 빛이 좋은 가을의 한옥마을. 시인의 단골 찻집에서 반가운 눈빛을 주고받는 두 선지식의 모습에서 ‘도반道伴’이라는 단어가 말금히 떠오른다. 온 삶을 통해 자신을 탐구하고 이제 그 에너지로 사람과 삶, 자연과 공동체를 이야기하며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선지식과의 만남만으로 마음이 보드라워졌다.

개구진 목소리의 시인은 얼마 전 다녀온 지리산 이야기를 꺼내며 스님의 안부를 물었다. 지리산은 스님이 살고 있는 터전이다. 스님은 맑은 눈빛으로 “요즘 반야봉에서 대모하고 있잖아”라며 웃음 짓는다.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시위 중이라고. 투쟁이라지만 목소리는 가볍고 표정도 편안하다.

자연, 생명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가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문득 시인의 글에 자주 등장하던 어린 시절 집짓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직접 흙을 개고, 나무를 잘라 만든 집을 짓던 풍경들, 온 동네의 축제였던 집을 짓던 기억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에게 집이란 그리고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김용택(이하 시인) 요새는 집이 없지. 아파트는 방이잖아. 내가 전주에 살면서 아파트 가까운 동으로 이사를 갔어요. 상당히 놀라운 게 3일도 안 가서 이전 집이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이웃 사람들도 그렇게 잊혀져 버리는 거죠. ‘아 이건 집이 아니라 방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집에 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인정이 없고 각박해지는 게 아닐까요.


도법(이하 스님) 옛날과 달라진 점이 그거에요. 삶의 방식도 그래요. 옛날에는 살 사람의 삶의 방식이나 취향, 필요에 따라서 집을 짓는데 요즘은 누가 만들어 놓은 곳에 맞추며 살아야 하는 거지.


시인 옛날 시골집은 동네사람 다 달려들어서 공동으로 지었잖아요. 그래서 동네사람 모두 그 집에 대한 추억이 있어요. ‘그 여자네 집’이라는 제 시가 있어요. 즉 공동의 개념이라는 것이죠. 누구나 같이 집을 지었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집이었던 거예요. 요즘 집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이죠. 나만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이잖아요. 또 집이 큰 돈이 되잖아요.


스님 시인 말씀을 들으니 ‘집이 돈이다’ 이 얘기네?(웃음)

시인 엊그제 신문을 보니까 부산 해운대에 아파트 분양이 되었는데 전망이 바다를 향해 있는 것은 5억씩 더 붙었데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가치가 자연을 향해 있어요. 서울에서는 산이 보이거나 한강이 보이는 집들이 비싸잖아요. 우리사회가 발전하는 것 같지만 결국 가장 높은 가치는 자연이에요. 도시문명이 발전할수록 한옥마을을 찾고 산을 찾고 바다를 그리워하잖아요.


스님 현대사회의 대안을 찾는다면 역시 자연, 마을, 가족, 이웃이 희망이에요. 나는 마을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마을은 공동체의 근원이기 때문이죠. 김 시인은 한평생을 마을에서 공동체적 삶을 살아온 모델로서 존경합니다. 그 외에는 나는 잘 모릅니다.(웃음) 김 시인을 마을 대통령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집 그리고 가족...행복의 근원 

스님 예전에는 집이라고 하는 것이 아이를 낳기도 하고 키우기도 하고, 사람이 죽으면 상을 치르기도 하고, 결혼식을 치르기도 했죠. 모든 인생을 담는 그릇이었어요. 그야말로 행복의 근원이었죠. 이웃과 늘 소통하는 공간, 개별로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한 인간, 나아가 가족 구성원의 모든 삶이 숨쉬는 공간이었죠. 요즘은 애도 병원에서 낳고,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장으로 가고 결혼하면 예식장에 가요. 이웃은 없죠. 철저하게 닫히고 고립된 개인적인 공간이 되어버렸죠.


시인 우리 어릴 때는 집에서 농사를 지었잖아요. 집 자체가 우주적인 삶을 경험하는 곳이었어요. 우리 아버지는 당신이 지은 집에서 살다가 돌아가셨어요.


스님 현대사회에서 집하면 떠오르는 게 아파트잖아요. 꼭 아파트여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가족과 삶과 이웃이 없는 게 현대 사회의 집인 것 같아요. 지금은 가족이 혈연의 가족만 의미하는 것 같아요. 미운 정 고운정이 들고 삶을 함께 가꾸는 ‘이야기’는 없는거지. 그런 공간에서 살다보니 가족의 정을 이야기하는 것도 어렵지요. 아파트라는 집 형태처럼 그 속에 사는 사람들도 폐쇄적이고 개인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거죠.


시인 나는 비록 아파트에서 살지만 잘 사는 편이라고 자부해요. 퇴임하고 집에서 놀고 있으니까 주로 집에서 안사람과 함께 주로 집에 있거든. 헌데 아들놈은 아침에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니 별로 볼 시간이 없어요. 나는 어릴 적에 아버지랑 나무하러 다니고, 풀도 베어오고, 마당에서 곡식 타작도 하고 농악도 하고 함께할 일이 많았거든요. 그렇게 일은 함께하지 않더라도 밥만이라도 함께 먹었으면 좋겠어요. 전 식구들이 다 모여서 밥을 먹을 때가 제일 기분이 좋아요. 그때 비로소 ‘우리가 한 집에 사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행복이죠.


스님 혈연으로 이뤄졌기에 함께 살지만 진정한 가족 공동체로서 정을 느껴야 사는 게 재미가 있잖아요. 가족이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다들 알면서도 이런 삶을 만들어 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지요. 


2편에서 계속~





도법스님은...

제주에서 태어나 18세에 금산사로 출가했다. 봉암사와 송광사 등 제방 선원에서 10년 넘게 수행했으며, 불교결사체인 ‘선우도량’을 만들어 청정불교운동을 이끌었다. 90년대 중반이후 실상사 주지로서 ‘귀농학교’와 중등대안학교인 ‘작은학교’를 열었고,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운동을 펼쳤다. 2004년도부터 ‘생명평화 탁발순례길’에 올라 길 위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수행자이다. 


김용택 시인은...

전북 임실 진메마을에서 태어났다. 순창농고를 졸업한 이듬해부터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2008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고향을 지키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를 썼다. 섬진강 연작으로 주목받아 ‘섬진강 시인’으로 불린다. 시집으로는 <섬진강> <맑은날> <그 여자네 집>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섬진강 이야기>가 있다. 이밖에 장편동화 <옥이야 진메야>,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등 많은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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