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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희 Nov 06. 2017

[인터뷰 기사] 스님과 시인, 인생을 이야기하다 2

가을에 읽기 좋은 인터뷰

아파트,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가족, 우리네 삶을 바라보는 두 선지식의 시각은 날카롭지만 시종일관 눈빛 속에서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그 온기는 각박한 삶 속에서도 항상 희망을 향해 있다. 우리 시대의 희망을 이야기 하는데 ‘교육’은 빠질 수 없는 화두. 정규 교육제도 안에서 시인과 스님은 모두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삶을 전적으로 경험하고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성적순은 아닌가보다. 공부 이야기가 나오자 “난 공부 많이 했어”라는 스님의 말씀에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공부중의 공부는 ‘인생 공부’ 

스님 요즘 사람들이 매달리는 시험공부가 뭐예요.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돈버는 공부잖아요. 돈에 정신이 팔려 인생 공부 할 겨를이 없어요. 삶을 살 겨를도 없고. 요즘 교육은 인간을 사람답게 사는 게 아니라 돈 만들기 위한 기계로 만들어요. 인생을 공부하고 삶을 살아가게 해야 하는데 인생도 없고 삶도 없어요.


시인 내가 오래 선생을 했잖아요. 학교에서 선생을 하면 아이들에게 시험 정답을 가르치는 공부를 해요. 사실 교육은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과 살고 있는 세상을 공부해서 그것을 이해하면서 인격을 만들어가는 거잖아. 선생은 그 인격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거잖아요. 하지만 우리 교육은 새로운 삶을 창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정답을 알려주고 외우는 교육을 해요. 인격은 없어요. 시험은 잘 보는데 사는 건 개판이에요.


스님 이런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기성세대에서 죽어라고 학교 공부, 즉 국가가 시키는 교육을 했잖아요. 그렇게 해서 굴러가는 현대 사회가 좋은가? 그렇게 사는 자신의 삶이 괜찮은 삶인가? 정말 내 아이에게 그런 삶을 살게 하고 싶은가? 이런 질문들을 엄마가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먼저 자기 정리가 되어야지요. 너도 나도 우리 사회가 이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요. 고급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다니지만 인생이 살맛이 없다고 그러잖아요. 그렇게 공부하고 이뤄진 내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내 아이들에게 그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니잖아요. 어른들이 이 부분을 정리해야 아이들 교육에 대한 논의가 가능해진다고 생각해요.


시인 스님 말씀은 돈 벌고 출세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교육이 아니라 사람답게 더불어 사는 인격을 가르치는 것이 진짜 교육이고 공부라는 거죠.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인간을 육성하는 교육이 없어졌어요. 이제 학교 선생님들은 인간 교육에 개입을 못해요. 사회도 마찬가지에요. 학교 교육도 무너지고 사회에서도 교육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가정교육이 더 중요해졌어요. 하지만 엄마들은 그런 교육을 하면 사회에서 뒤지고 돈을 못 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비교하고 경쟁을 하게 되지요.


스님 모든 아이들 문제는 부모나 어른들이 아이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해요. 즉 아이들이 자기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없어요. 이게 가장 큰 문제에요.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여기 이 식물을 보더라도 스스로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아이도 마찬가지에요. 스스로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어요. 스스로 인생을 헤쳐 나가고,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모든 능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요. 이걸 믿어야 해요.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가 가지고 있는 그 가능성과 힘이 잘 작동되어서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에요. 지금 부모들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으로 아이를 키우려고 하는 거예요. 


스님은 덧붙여 아이에 대한 믿음은 부모 스스로에게서 나온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없다면 아이에게 흔들리지 않은 믿음도 줄 수 없다고. 덧붙여 시인은 부부사이의 신뢰와 사랑을 강조했다 


비움과 만족, 행복한 삶 

시인 부부가 대화를 안 하고 서로를 믿지 못하면 자식들은 고스란히 보고 배워요. 우리 부부는 항상 서로를 바라봐요. 그리고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자주 나눠요. 제 안사람은 저를 위해 문학을 공부하고, 매일 아침 신문을 봐요. 오늘 아침에도 저는 신문에 밑줄을 긋고 나왔어요. 그 신문을 보면서 서로를 공부하는 거예요. 우린 그냥 만났어요. 우리 안사람이 먼저 결혼하자고 했지요. 전 도망갔어요. 내가 잘 생겼어, 돈이 많아, 장래가 촉망돼, 집안이 좋아, 학벌이 있어... 좋아할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느 날 내게 시집 온거야. 아무 것도 없는 나를 좋다고 해주니 나도 고마워서 자꾸 쳐다보게 되요. 지금도 볼수록 예뻐요. 신뢰를 가지고 평생 함께 가려면 이렇게 좋은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물론 노력도 필요하죠. 전 안사람을 자주 관찰해요. 그 사람이 지금 어떤가 모습을 관찰하면 마음이 보여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내를, 남편을 잘 안 보려 들어요. 사는 게 바쁘고 자기 문제에 빠져 있는거죠. 저는 사람을 좋아할 때 그냥 좋아해요. 그 사람의 무엇 때문이 아니에요.


스님 ‘비움과 만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요. 나비는 춤으로 비우고 꽃은 향기로 비운다고 하지요. 기대와 욕심을 비운만큼 만족이 찾아오죠. 그런데 우린 무언가를 얻어서 만족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이건 욕구일 뿐이에요. 욕구는 계속 커지죠.


시인 스님과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산에서도 경쟁을 한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냥 산길을 걸으면 되는데 여기서 저기까지 빨리 가야 하나 봐요. 마음을 비운 사람이 자연을 잘 바라봐요. 마음을 비워야 내 안으로 들어오는 거지요. 정원에 소나무를 심으면 얼마짜리인가가 중요하지 소나무의 아름다움이 안보이죠. 나무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아름답게 자리 잡을 시간이 없는 거예요. 들에 있는 풀 한 포기도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오면 좋은 거잖아요. 꼭 비싼 소나무가 아니어도 말이죠. 아까 아파트 이야기한 것처럼 돈이 되는 자연은 좋아들 하면서 말이죠. 하하하


스님 시간 돈, 지식, 기술.. 온갖 것이 다 부족하고 불만스럽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인데 그런 사람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이 뭐가 그리 부족한지 되짚어 봐야 해요. 남편이 하나뿐이어서 둘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긴가?(웃음) 발이 두개가 부족해서 걷는 게 아쉽다면 다섯 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멋있는 색시 얼굴을 봐야하는데 눈이 두 개로 부족하다는 것인가? 정확하게 짚어보는 작업이 필요하죠. 밥이 부족해서 배가 고픈 것인가? 물이 부족해서 목이 마른 것인가? 뭐가 부족한가요?

내가 볼 때는 사람들이 실제와 상관없이 사회 분위기에 휘둘려서 불만을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뭐가 그렇게 부족해요. 굶거나 얼어 죽는 사람 없잖아요. 자신의 삶이 충분한데도 자꾸만 비교하고 있는 거죠. TV보니까 멋진 에어컨이 있는데 우리 집은 없다든지 누구집 아내는 예쁜데 우리 아내는 안 예쁘다던지..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의존적이고 종속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 소외감에 시달리게 되요. 삶이 불만족스러운 내용들을 보면 대부분 그래요.

이런 것을 걷어내지 않고 만족스러운 삶이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불교적으로 이야기 하면 ‘전도몽상’이라고 해요. 헛꿈을 꾸는거죠. 그래서 명확하게 불행의 요소를 짚어보고 괜한 비교를 하지 않으면 삶이 홀가분해지죠. 삶에서 불편을 줄 정도로 부족한 부분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작은 불만족을 확대해서 나머지 행복마저 느끼지 못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한쪽 다리가 짧아요. 그럼 우리는 그걸 가지고 ‘병신’ 이렇게 말을 해요. 다리하나가 짧은 것을 가지고 삶을 규정해버리는 거예요. 결국 실상을 못보는 거죠.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야만 삶이 만족스러워지기도 하고 삶이 자유로워지기도 해요. 주체적으로 살지 않으면 자기만족도 없고 결국 아름다운 삶이 이뤄지지가 않아요. 아이들도 자기 인생을 스스로 살도록 길을 찾도록 지켜봐줘야 해요.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자연도 이웃도 함께 살아야 할 공동 운명체’라는데 두 선지식의 뜻이 닿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희망을 찾고 대안을 향해 실천해야 한다는 점에서 희망은 자기 스스로에게서 출발한다는 것을 스승들의 가벼운 대화를 통해 배우게 된다.  


2009년 10월 우먼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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