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며칠 전 스마트폰 국가재난 알림을 통해 코로나 19 상황이 심각 상태로 격상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주말에 진행하던 코스를 잠정 연기하기로 합의하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틀 후 역시 긴급재난문자를 통해 2월 1일부터 현재까지 00장소에 방문했던 사람들은 가까운 보건소에 연락 후 코로나 19 진료 안내를 받으라는 문자를 받았다. 세상이 바뀌긴 했구나. 정보를 소통하는 방식과 그것에 동참하는 방식이 빠르고 순조로워졌구나 안심이 되었다. <총균쇠>라는 책에서 균이 종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이제 그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것 같다.
심리적 물리적 대응이 빨라졌고 정보가 투명해졌다. 며칠 사이 SNS에는 다양한 정보들이 공유되고 서로가 서로의 삶의 방식을 알아가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더없이 개인화된 삶으로 변화하는 요즘, 이번 사건은 공동체로서 함께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톨릭은 한국 천주교회 236년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미사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전국의 의사들은 확산이 빠른 속도로 높아지는 지역으로 기꺼이 달려가고 있다는 뉴스도 보았다. 기업에서도 신속하게 재택 근무, 원격 근무 체제로 변화를 결정했다. 아마도 앞으로 다가올 근무 방식의 변화를 린하게 테스팅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하는 전망도 조심스레 해보았다.
2월 14일경 00장소에 방문했던 나는 그 문자를 받고 잠시 주저했다. 주말 코스에서 체온을 매일 재었는데 36도 언저리인 데다 무증상이므로 별 걱정이 없으니 안 가도 되겠지 하며 미루는 마음이 힘을 부렸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묵주기도를 한 후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는 마음으로 이동시켰다. 산책을 하며 '주의 회복' 연습을 했다. 홍제천을 걷다보니 어느덧 보건소. 건물 바깥에 마련된 흰색 천막의 선별 진료소 앞에서 역학조사서를 작성하니 역시 나는 해당이 안되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서 체온을 재고 이런저런 질문에 답을 했다. 00장소에 왜 갔냐는 질문은 하지도 않았다. 해외 다녀온 경험을 물어서 1월에 미국에 갔다가 14일에 귀국을 했고 16일 무렵 감기와 중이염 증상으로 00 병원에서 진료받고 약 처방받아먹은 얘기를 했다. 거의 10일을 잘 쉬고 몸이 낳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더니, 목을 살펴보자고 했다. 아~하고 입을 벌렸더니 목은 괜찮다고 한다.
2월 14일경 00 장소에 방문을 했으니 2주 가량이 잠복기이므로 내일모레까지 열이 나는지 잘 살펴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추이면 걱정 안 하셔도 될 거라는 말로 안심도 시켜주었다. 두 명의 여성(많아야 30대로 보이는) 역학 조사관은 희색 방호복 같은 것과 마스크 얼굴 덮개 같은 것으로 온몸을 가리고 있었다. 사람이 출입을 할 때마다 지퍼로 된 입구를 여닫아주기까지 했다. 매일 많은 수의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보이는데도 정성껏 사람들을 만나는 모습에 고마움이 들었다. '수고해주셔서 감사한다' 인사를 나도 정성껏 하고 나왔다.
00 장소에 갔던 것은 지난해 가을 아빠의 장례 이후 갑작스레 무너진 몸 컨디션과 연결이 되어 있다. 가을부터 저혈압과 저체온 증상을 향상하려고 만보 걷기도 시작하고 모발 검사를 통한 미네랄 관리와 식이관리도 해오고 있다.
날씨와 더불어 정서적 우울감도 자주 찾아왔다. 여러 가지로 힘든 겨울이었다. 그 영향인지 모르지만 오른손의 불편함이 종종 찾아와서 몸을 돌보기 위해 그곳에 갔는데 예약도 못하고 왔을뿐더러 이후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중요도가 낮아져서 증상을 잠시 잊고 있었다.
요즘 속상했던 내 몸의 변화는 분명 이것이었는데 바이러스라는 외부 환경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속상함이 줄어들었다. 어떤 면에서 내게는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이것을 행운으로 지각하는 이유는 겨우내 속상함이 찾아왔지만 거기에만 빠져 있지 않고 목표를 만들고 움직이는 쪽으로 결정한 것도 크다. 11월 한 달 코스를 건강하게 마쳤고, 이후 12월 31일에 미국으로 출발하여 15살 쌍둥이들의 의식 탐사를 돕는 여정을 만들었다. 2월에는 제주 여행을 하기도 했고 코스를 정성껏 준비했더랬다. 일어난 일을 최상으로 만들기가 가져온 행운이랄까.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49일쯤은 그 존재감이 너무 커서 실감이 나지않아서 눈물이 났다. 그 후 49일은 그리움과 외로움과 기억들이 쏟아져 눈물이 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100일이 지나고 나니 망각이 시작되는 듯했다. 눈물이 잘 안나고 마음에서 기억과 감정들이 떨어져 나가고 담담해졌다.
2월 16일 모처럼 전국에 눈이 많이 내렸다. 한반도에서 눈이 가장 특별한 곳 제주에 가고 싶었다. 월요일 저녁 6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출발했는데 기상 상황이 나빠서 제주 주변에서 비행기가 롤러코스터처럼 움직이며 착륙이 지연되었다. 비행기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아졌던 순간, 모두 무사 착륙을 기원했다. 그 순간의 고요함과 간절함을 기억한다.
부족하지만 아빠의 마지막 시간이 외롭지 않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했던 간절함도 아주 오래전 같았다. 그 순간을 떠올리니 친구, 가족들의 사랑과 격려와 지지가 함께 느껴져서 감사함이 느껴졌다. 2020년은 많은 감사함 속에서 다시 뚜벅뚜벅 삶을 걸어가야지 했는데 잠시 잊고 있었다. 이토록 망각의 동물인가. 제주에서 3일을 보내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부와 사랑을 전했다. 뜻하는 바 귀하게 이루길, 건강하고 행복하길, 사람들을 떠올리고 연결하며 마음이 든든해져서 서울에 올라왔더랬다.
요즘 속상했던 내 몸의 변화는? 이라는 카드를 집어들었을 때는 분명 속상함으로 시작을 했는데 휘적휘적 생각들을 글자로 적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져 있다. :)
20200226 카페 에쏘하우스에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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