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집은 그대로 두고, 캐리어 두 개와 함께 서울로 왔다. 돌아온 서울, 어딜 가나 사람이 많다. 사람이 많은 것이 이토록 생기로운 일이던가.
지난주에는 안 마시던 커피를 마시고 새벽까지 잠이 안 와 오래된 메일을 열었다. 2000년대 초반의 흔적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한 환각의 밤이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000님의 메일이었다.
배낭여행 중 태국에서 딱 한번 마주치고 메일 주소를 달라해서 드렸는데(그때는 여행 중 만난 이들과 메일 주소를 교환하곤 했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진심이 묻어나는 메일이 아직 그자리에 있었다. 018 핸드폰 번호와 함께.
이십 대의 나는 외모가 수수했던 그가 맘에 차지 않아 메일에 답장조차 하지 않았던 오만함과 그 메일을 지우지도 않은 게으름까지 두루 갖추고 있더라.ㅠㅠ
그가 궁금해져 네이버에 이름을 검색하니 10여 년 전 조난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마음이 또 마구 서글프고 아파졌다. 이게 무슨 모노드라마인가.
그 영향은 이튿날까지 이어져 결국 여행 인연으로 만난 지인에게 톡을 하게 되고 일산에서 15년 만에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이 만남의 발단이 그 메일임을 이야기 나누니, 놀랍게도 그 사람을 알고 있단다. 추웠던 그날, 우리는 그렇게 모여 앉아 설산에서 돌아오지 못한 그를 애도했다. 그가 메일 답장 안 한 것을 가슴에 묻고 가지 않았기를 소심하게 사과하면서.
매일 지하철에서 긴 시간을 보내고, 수많은 사람들을 본다. 나와 인연이 있건 없건 그들에게 자비심 연습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