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축 이야기. 14

온돌

by Atticus


아랫목을 아시나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날씨가 추운 날에는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아랫목에서 뜨뜻하게 등을 지지고 싶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12월쯤, 어느덧 패딩을 입을 날씨가 되고, 밖에 오래 있으면 몸이 으슬으슬할 때는 어김없이 어디선가 아랫목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랫목이라는 단어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건 아마도 아궁이에 불을 때서 사는 게 시골에서도 완전히 지워진 시기와 비슷하겠지요. 지금부터 아궁이와 아랫목, 즉 온돌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 전통건축의 난방방식은 온돌 구조입니다. 온돌 구조란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열기가 방바닥 아래에 있는 골을 지나면서 그 위에 있는 구들장을 데웁니다. 방바닥을 데우기 때문에 따뜻한 열기는 위로 올라가고, 찬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게 되죠. 그렇게 공기가 순환되면서 방 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하는 대류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방바닥이 따뜻해지면서, 대류현상으로 따뜻해지는 것. 그것이 우리 전통건축의 난방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방바닥을 데웠던 열기는 점점 약해지고, 열기로 인한 연기가 굴뚝으로 나가게 됩니다.

아궁이 이미지.jpg 온돌의 난방 방식


위 도면을 보시면 아궁이에서 불을 때기 때문에 아궁이와 가까운 쪽이 가장 따뜻한 구조이며, 그래서 아궁이에 가까운 쪽을 아랫목이라고 합니다. 즉 동서남북, 혹은 위아래 개념이 아니라 아궁이와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을 아랫목이라고 불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곳은 윗목이라고 하였고요, 대개 아랫목은 나이 많으신 분들이 자리를 차지하셨습니다.


그리고 위 도면에서 중요한 대목이 하나 있는데, 온돌 구조는 방바닥 밑에 있는 골을 통해서 열기가 가야 하기 때문에 불을 피우는 곳은 방바닥 보다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아궁이는 난방을 위한 역할을 한 동시에 솥단지를 두어 밥을 짓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즉 아궁이는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부엌이 주택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게 되었습니다. 예전 기억도 할아버지 댁에 가면 방에서 부엌을 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신고, 기단을 걸은 뒤에 문지방을 넘어 낮은 부엌으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엌으로 가는 게 꽤나 귀찮았었죠. 그리고 부엌은 흙바닥으로 되어 있었고, 그을음으로 인해 어두운 느낌이었습니다. 예전 어머님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지, 부엌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IMG_0718.jpg 부엌과 아궁이
tempImageQuj80F.heic 빨간색 점선이 방바닥 높이. 그리고 반침과 다락방


다시 아랫목으로 돌아와서, 아랫목은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주로 자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부엌은 방바닥보다 낮기 때문에 부엌의 윗 공간은 남는 공간이었죠. 그래서 여기에다가 나무를 건너질러 다락방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락방을 만들지 못해도 반침이라는 벽장을 대부분 만들었지요. 위 사진을 보시면 반침과 다락방을 적어 두었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붙박이장입니다. 혹시나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은 여기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벽장에서 사탕을 꺼내 주시던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여기가 완전 보물창고 같은 곳이었죠. 그리고 저 문을 열면 다락방이 있는데, 좁고 낮은 곳이지만 아이들이 놀기에는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IMG_0698.jpg 아랫목의 반침과, 다락방 문
tempImageze2mv8.heic 다락방 내부 모습




온돌 방식은 하나의 방에 하나의 아궁이와 굴뚝이 기본입니다. 그래서 난방을 해야 하는 방은 모두 아궁이와 굴뚝이 있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굴뚝을 하나로 합쳐서 사용하기도 했으나 아궁이는 각 방에 하나씩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개별난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모든 아궁이에 취사의 역할을 겸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안채에 있는 가장 중심이 되는 방에 위치한 아궁이에 솥을 걸어 부엌으로 쓰고, 나머지는 솥단지 없이 난방만 하는 아궁이로 사용했습니다. 구분하기 위해 취사와 난방을 동시에 하는 아궁이를 부뚜막 아궁이라고 하고, 난방만 하는 아궁이를 함실아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여름에는 당연히 난방을 할 수 없었겠죠. 그래서 취사를 하기 위에 마당에 따로 솥을 건 아궁이를 두었습니다.



IMG_0654.jpg 함실아궁이. 실제로 불을 피워서 그을음이 생겼다.




그럼 우리 전통건축의 난방 방식은 언제 만들어지게 된 것일까요? 예전에도 난방 방식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바닥 전체를 난방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난방을 하는, '쪽구들' 방식으로 난방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고려시대에 이르면 현재 볼 수 있는 온돌 구조처럼 방바닥 전체에 온돌을 설치한 형태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온돌이 어느 지역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혹은 어떤 신분에서부터 시작했는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어쨌거나 조선시대 초기에는 상류층에 전면 온돌을 사용하였고, 조선시대 중기가 되면 온돌이 지금처럼 일반적으로 보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방바닥 전체를 온돌 방식으로 하는, 일명 전면 온돌이 되고 나서, 단순히 난방 방식만 바뀐 것이 아니라 생활 문화 자체가 바뀌게 됩니다. 일단 전면 온돌이 되면 방바닥 전체가 깨끗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와야 했습니다. 방바닥이 따뜻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앉아서 생활하고, 방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건물에 들어올 때도 신발을 벗기 때문에, 밖을 나가기 위해서는 다시 신발 신는 곳으로 와야 합니다. 이로 인해 건물에서 다니는 동선이나 창호도 여기에 점점 맞춰졌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좌식 생활이 우리 생활에 녹아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을 벗은 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구조




사실 전통방식의 부엌은 예전 어머님들이 참 힘들었을 방식입니다. 지면보다 밑에 위치한 부엌의 문지방을 넘어 다니느라 다리가 아팠을 것이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가마솥에 밥을 짓느라 허리가 다 휘었을 겁니다. 그리고 밥을 하면 밥상을 들고 방으로 가야 했고, 외부 공간이 이게 너무 덥거나, 너무 추웠을 겁니다. 이러한 재래식 부엌은 196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새마을 운동'과 함께 변화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부터는 우리가 잘 아는 방식의 부엌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비로소 취사와 난방이 분리되었습니다.취사는 개량된 주방에서 하게되었고, 난방은 보일러를 따로 두었던 것이죠. 하지만 바닥을 데우는 난방 방식은 그대로 가져가서 지금까지도 바닥에 온수 파이프를 두고 방바닥을 데우는 방식으로 난방을 합니다. 침대를 사용하는 입식 생활에는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난방 방식은 바뀌지 않은 것입니다.



법보전동별당_1179.JPG 파이프에 따뜻하게 데운 온수가 지나가 난방하는 방식. 바닥을 데우는 점에서는 같다.




가끔씩은 아궁이에서 나오는 눈을 뜨기 힘든 연기 속 따뜻한 열기와, 솥뚜껑에서 새어 나오는 밥 짓는 냄새, 그리고 아궁이에서 구워 먹던 고구마와 감자, 아랫목에 놓아둔 이불속 따스함, 그리고 벽장에서 꺼내주시는 사탕 등이 생각납니다. 30년 전만 해도 시골에는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진짜 사라진 것 같아 아쉽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 답사 다니면서 찍었던 부엌 사진 몇 장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실제로 사용하던 부엌 사진이라 더 정감이 가는 부엌 사진입니다.



tempImageUislTx.heic


tempImage3d3g7n.heic
tempImagesDTjaS.heic






*글 쓰는데 도움받은 책

김도경,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현암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