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
우리 전통건축 지붕에 "날아라 슈퍼보드"에 나오는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가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모든 전통건축에 있는 건 아니고 궁궐건축, 그중에서도 왕이 행차하는 장소인 궁궐의 정전, 정문, 침전, 누정 같은 건물에만 놓여 있던 이 특수기와의 명칭은 "잡상"입니다. 이 잡상은 내림마루나 추녀마루 끝에 위치하고 있는데, 기와를 흰색으로 마감한 양성마루 위에만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추녀마루나 내림마루 등 높게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경복궁의 근정전 사진입니다. 경복궁 근정전은 태조 4년인 1395년에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고종 4년인 1867년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경복궁 근정전의 추녀마루 쪽을 확대해 보겠습니다.
지붕을 흰색으로 바른 것을 양성바름이라고 합니다. 그 위에 작은 형상들이 있는 것이 보이시나요?? 한번 더 확대를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추녀마루 끝에 일렬로 세워져 있는 것들을 "잡상"이라고 하며, 기와의 한 종류에 포함이 됩니다. 맨 앞에는 사람 형상을 하고 있고, 그 뒤로는 짐승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아래 이미지는 우리 전통건축에 사용된 잡상의 종류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고 위의 그림을 보시면 맨 앞에 대당사부(삼장법사)가 있고 그 뒤로 손행자(손오공), 저팔계, 사화상 등이 차례로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번 대당사부는 서유기에 나오는 현장법사(삼장법사)이며 머리에 삿갓을 썼다.
2번 손행자는 온갖 조화를 부린다는 돌 원숭이 손오공이며 대당사부와 같이 삿갓을 쓰고 있다.
3번 저팔계는 돼지 형상이며 삿갓을 쓰지 않고 있다..
4번 사화상은 얼굴 모습은 사자 모습을 하고, 옥황상제를 모시고 궁전에서 수렴지기를 했던 괴물이다.
5번 이귀박은 머리의 앞과 뒤에 뿔이 난 짐승이다.
6번 이구룡은 머리에 두 개의 귀가 있고 입이 2개로 보인다.
7번 마화상은 말의 형상을 한 서유기의 혼세마왕이다.
8번 삼살보살은 재앙을 막아주는 보살이라는 의미로 대당사부와 같이 인물상으로 표현된다.
9번 천산갑은 머리 뒤통수에 뿔이 돋쳤고 등이 다른 잡상보다 울퉁불퉁 튀어나왔다.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잡상은 건물마다 놓이는 순서와 개수가 다른데, 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는 고정이고 그 이후부터는 5개, 7개, 9개 등 홀수로 건물마다 다양하게 놓여 있습니다.
그러면 판타지에서 나올 것만 같은 잡상은 어떻게 하다가 궁궐, 그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건물에 놓이게 되었을까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등 명칭이 서유기 등장인물이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잡상은 중국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중국은 성리학의 영향을 받던 시기인 송, 원대로부터 시작되어 명나라 때 잡상이 완전히 정착되었지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최소한 고려후기 때부터 잡상의 사용되었다고 추측할 수는 있으나 현재 남아있는 건물이 없어 확인할 수는 없고, 조선시대인 임진왜란 이후 성행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사용된 잡상은 잡상의 개념만 가지고 왔을 뿐 중국과는 모양이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 전통건축은 나무나 주요 뼈대이기 때문에 물과 불에 매우 취약한데 특히나 불에 너무나 취약합니다. 그래서 화재를 면하기 위해서 주술적인 힘이 필요했을 건데 잡상이 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즉 건물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을 겁니다. 특히 임진왜란 때 모든 궁궐이 불타버렸고, 그 이후에 궁궐이 재건되는 상황에서는 그런 주술적인 힘에 더욱더 기대고 싶었을 겁니다.
유교의 시대였던 조선시대에 불교 색채가 강한 잡상을, 그것도 궁궐 내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물에 썼다는 게 신기합니다. 그만큼 어지러운 나라 상황에 주술적인 무언가에 기대고 싶었을 것이라는 절박함도 느껴집니다. 재미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의미만큼은 깊은 잡상. 우리 전통건축을 보러 가시는 일이 있으면 한 번쯤 눈여겨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