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축 이야기. 22

청기와

by Atticus



조선시대라면 꿈도 못 꿀 청기와 음식점



청기와란, 이름 그대로 약간 푸르스름한 청색의 색을 가지고 있는 기와입니다. 제가 포털사이트에 청기와를 검색어로 넣고 검색하니 가장 많이 나오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청기와 타운과 청기와 감자탕입니다. 두 장소 모두 음식점입니다. 청기와 타운은 생긴 지 오래되지는 않았는데 벌써 체인점을 30점이나 낸 아주 유명한 고깃집인데,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왜 청기와라고 했는지 나오지는 않더라고요. 청기와 감자탕은 오래된 감자탕 음식점으로 여기 역시 체인점을 꽤 많이 낸 음식점입니다. 청기와라는 이름의 기운이 좋은 것일까요. 왜 청기와라는 이름을 썼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냥 이름이 이뻤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어떠한 의미를 부여했을까요. 아니면 청와대의 영향일까요??


지금은 이렇게 음식점에도 쉽게 이름이 붙을 수 있는 청기와지만,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실렸을 만큼 아주 소수의 건물에만 사용된 굉장히 귀한 재료였습니다.


- 장령 정지하가 불사의 중지를 요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아니하다.-

장령 정지하가 아뢰기를

(전략) 청기와를 구워서 만드는 데 들어간 재력이 너무 많이 들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다만 근정전과 사정전에만 청기와를 덮었을 뿐이고, 문소전과 종묘에도 오히려 덮지 못했는데, 어찌 절에 이를 덮겠습니까?? (중략) 청기와와 등롱(등불)에 소비하는 비용이 적지 않으니, 만약 절을 창건하지 않는다면 등롱의 제조도 또한 그쳐야 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등롱은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그전 것을 그대로 수리 보수할 뿐이다. 청기와는 재력이 자못 많이 들고, 또 그대들이 옳지 않다고 하는 까닭으로 이를 정지시키겠다."

<조선왕조실록> 문종 1년, 2월 28일


위 글이 문종 1년인 1450년에 실린 조선왕조실록의 기사입니다. 문종이 즉위한 해에 불상을 만들고, 등롱(등불의 종류)을 보수하고, 청기와를 덮는 등 불사를 하려고 하니 신하들이 이익이 없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내용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 정궁인 경복궁의 근정전, 사정전(*지금의 경복궁 근정전, 사정전은 청기와가 아닙니다. 현재 지어진 경복궁은 1867년에 중건되었는데, 중건 시 제조 기술의 공백으로 인해 청기와를 사용하지 못했습니다.)에만 청기와를 덮었고, 태조를 모신 사당인 문소전과, 종묘 건물에도 덮지 못했다니, 당연히 사찰에 덮는 걸 반대할 만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청기와가 무엇이길래 비용이 많이 들어 임금의 명까지 어길 정도였을까요?? 오늘은 기와의 제작과 청기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tempImageKzNgGH.heic 창덕궁 선정전 청기와


국가유산수리표준시방서에는 기와의 제작 방법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수제전통한식기와[전통가마] : 전통도구와 기법으로 제작한 한식기와

수제전통한식기와[현대가마] : 전통도구와 기법으로 제작하되 기와의 소성은 현대식 가마를 이용하여 소성한 한식기와

전통한식기와[현대가마] : 현대식 기계장비를 이용하여 제작한 한식기와


이름이 좀 어렵지만 수제라는 말이 들어가면 사람이 직접 빚어서 제작한 기와이고, 수제라는 말이 빠지면 공장에서 제작한 공장제 기와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쓰는 거의 대부분의 기와는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공장제 기와이고, 중요한 국가유산을 수리할 때 선택적으로 수제전통기와를 사용합니다. (숭례문을 복구할 때 수제 기와를 사용했습니다.)


tempImageCPf2H8.heic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전통한식기와. 균일한 형태를 나타내고, 내구성이나 강도도 좋은 편이나, 예전 기와보다 무겁다.


그렇다면 이런 현대적인 도구가 없었을 때는 어떻게 기와를 만들었을까요?? 기와는 흙을 이용해 만듭니다. 그리고 흙을 이용해 단단하게 만드는 물건의 경우는 대부분의 공정은 비슷합니다. <흙을 채취한다. 성형한다. 굽는다.> 예전의 상황은 우리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이런 공정을 거쳤을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수제전통한식기와의 공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제전통한식기와 제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국가유산청에서 발행한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이야기 2』에 잘 실려있습니다. 공정이 많지만 대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흙 채취, 성형, 굽는 사진만 가지고 와서 편집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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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전통한식기와 제작방법 <출처 : 국가유산청,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이야기2』, 104~107p 부분 편집>


아까 언급했던 대로 흙을 채취하고, 성형하고, 굽는 방식으로 해서 기와가 완성되지만 이건 공정을 아주 간략하게 설명한 것이고 실제로는 아래와 같은 복잡한 공정을 거쳐 기와가 완성됩니다.


tempImageN6nVgn.heic 수제전통한식기와 제작방법 <출처 : 국가유산청,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이야기 2』, 103p>


30평 정도 되는 전통건축의 지붕에는 수키와, 암키와, 부속기와 등을 합쳐서 대략 9,000장 정도가 들어갑니다. 9,000장을 일일이 한 장씩 만들어냈으니 정말 엄청난 공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매년 초가이엉을 잇는 게 번거롭더라도, 일단 서민들은 기와를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을 것입니다. 공력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 기와지붕이 좋은 걸 알면서도 사용을 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청기와는 중국 명나라 황실에서 유행한 것입니다. 만드는 방식은 기와에 유리질의 유약을 발라 초록빛이 드러나도록 구워 낸 것입니다. 사실 기와에 유약을 발라 굽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나,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언급했듯이 문제는 유약을 만드는 비용입니다. 유약은 주제, 용융제, 착색제로 구분되는데 주제는 모래나 석영 광물이 원료이며, 유리의 뼈대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용융제는 녹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 첨가하는 물질로 납과 염초가 사용되고, 착색제는 색을 내는 것으로 구리가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염초(질산칼륨)는 전쟁에서 사용하던 화약의 핵심 원료였기 때문에 제작에 많은 비용이 들었다고 하며, 색을 내는 착색제의 원료는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서 일본과 중국 등의 외국에서 들여오는 수입품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니 당연히 청기와의 제작비용이 증가하게 되고, 한번 지붕에 올라하면 수천 장에서 수만 장까지 들어가는 기와에 쓰기에는 비용이 너무 컸기에 거의 사용이 안된 것입니다.


청기와에 대한 재미있는 속담도 있는데 바로 "청기와 장수"라는 속담입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청기와 굽는 방법을 창안해서 큰돈을 벌었는데, 이익을 혼자 차지할 생각으로 남에게 그 방법을 가르치지 않고 죽었다는 속담으로, 비법이나 기술 따위를 자기만 알고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시대 후기인 1867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도 청기와를 제조할 수 있는 사람이 죽어 제조기술이 넘겨지지 않아 청기와를 올리지 못했다니 굉장히 고급 기술이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청기와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는 있지만 만들어진 기와에 한 장 한 장 유약을 발라 구워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시대 초에도 비용이 비싸서 사용되지 못했던 청기와 건물은 현대에서도 비용의 문제로 많이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된 예는 청와대가 있습니다. 이런 청기와가 감자탕 앞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참 재미있다고 종종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용문사에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가 유약을 발라 반짝반짝한 청기와 건물을 보고 생각이 미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tempImage3owEgw.heic 신흥사 대웅전
tempImageZib3Dj.heic 용문사 지장전
tempImagevyPbY2.heic 청와대 (*사진출처 : 연합뉴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5331297)
tempImageJqYEm6.heic 양주 회암사지 출토 청기와




*글 쓰는데 도움받은 문헌


『조선왕조실록』

국가유산청,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이야기 2』, 2012.

이지희, 『조선 전기 청기와의 제작과 유약 원료의 수급문제』, 서울과 역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