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건축 이야기. 23

창호

by Atticus


"이곳은 지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제가 아주 예전에 어느 고택에 답사를 할 때였습니다. 내부를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내부를 답사하고, 문이 열려 있길래 아무 생각 없이 약간 높은 턱을 넘어 지나가자 옆에 계신 분이 저에게 한 말씀입니다. 이곳은 창문이기 때문에 문처럼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넘어가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분은 저에게 창과 호의 다른 점을 알려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들었던 창호, 그리고 문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또렷하게 기억이 남습니다. 오늘은 이 창과 호, 그리고 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요즘에는 창호(窓戶)라는 말은 잘 안 쓰고, 창문과 문 이렇게 구분해서 부릅니다. 명확하게 구분이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 전통건축은 창호라는 단어가 있고, 문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었습니다.


창호의 한자를 살펴보면 창(窓)은 창문의 창(window)을 말하는 것이고, 호(戶)는 지게 호라는 한자로 지게문(door)을 뜻하는 한자입니다. 지게문이란 우리 전통건축에서 마루와 방 사이의 문이나 부엌의 바깥문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일부로 지게문을 뜻하는 지게 호를 한자로 썼다는 것은 지게문이 실내에서 사용되는 문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전통건축에서 문(門)은 외부 출입을 위한 공간, 즉 영어로(gate)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우리처럼 창문과 문 이렇게 구분하지 않고, 기능이 엄격하게 구분되는 두 한자를 붙여서 "창호"라는 단어 하나로 말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우리 전통건축 창호의 형상에 따른 것으로, 이것은 좌식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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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참 좋아하는 입면인 동춘당 종택 사랑채 입면입니다. 이 입면에는 창과 호, 그리고 문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먼저 1번은 문(gate)입니다. 외부에서 내부로 출입할 수 있는 문으로 gate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중문이라고 이름이 붙여졌을 겁니다. 2번은 창(window)입니다. 마루가 높게 생겨서 창으로 쉽게 인지가 될 것입니다. 3번은 호(door)입니다. 즉 마루와 방 사이에 다닐 수 있는 지게문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4번은 창(window)입니다. 즉 이 입면에서는 건물의 실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1번 중문을 통해서 내부의 문을 통해 들어가거나, 신을 벗고 3번인 지게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야 합니다. 2번과 4번은 창으로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 아닙니다.


3번과 4번은 외관상으로 보면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데, 여기서는 창과 호를 구분 짓는 중요한 구조물이 있습니다. 바로 머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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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을 보면 창 밑에 여러 부재를 조립하여 만든 구조물이 있는데 이것을 머름이라고 하며, 창문 밑에 있는 창턱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은 문턱의 높이가 낮아야 하지만, 채광 및 환기를 위한 창은 창턱의 높이가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우리 전통건축의 창턱은 대부분 위 사진의 머름과 같이 1.5자에서 1.8자 사이(45~54cm)에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보면 각 방에 있는 창은 창 턱의 높이가 0.9m 정도로 높은 반면, 거실이나 베란다에 위치하고 있는 창은 0.3m가 채 안되게 낮게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 방의 용도에 맞게 창턱의 높이가 설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통건축의 머름은 45~54cm라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아주 애매한 높이로 만들어졌습니다. 왜 이 높이가 나온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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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문물이 들어오기 전,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생활 방식은 좌식 생활이었습니다. 즉 모든 생활은 앉아서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머름의 높이는 좌식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입식 생활을 하는 지금에야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니 창턱이 높이가 높아도 답답하지 않지만, 좌식 생활을 할 때 머름의 높이(창턱의 높이)가 높으면 외부를 볼 수 없어 생활하는데 매우 답답했을 겁니다. 밖을 보려면 일어나야 하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좌식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고 위의 사진처럼 창에 기대면 저 높이가 팔을 들어 올려놓기에 딱 적당한 높이입니다. 인체의 치수를 고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방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사람은 이 집의 주인 내지는 가족입니다. 이 사람들이 집안사람들이고, 이 사람들이 여기에 앉아 보는 사람들은 외부 사람들이거나, 혹은 일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밖에서 안을 바라볼 때 집 안이 많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머름의 높이는 너무 낮지 않은 적당히 높은 높이가 된 것이고, 오랜 세월에 걸쳐 1자에서 1자 반이라는 높이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tempImageProaAy.heic 정온선생 고택. 건물의 바닥도 높고, 머름 높이 때문에 사생활 보호가 되었다.


이렇게 머름이 적당히 낮은 위치에 만들어져 창틀을 형성하다고 보니, 그 옆에 만들어지는 호(戶)도 이 머름에 맞춰서 그 하부를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이를 궁창이라고 하는데, 머름과 궁창으로 인해 문을 닫았을 때 형태적으로 유사하게 보이게 된 것입니다. 형태뿐만 아니라 머름의 높이가 사람이 충분히 넘어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창과 호의 엄격한 구분이 좀 어려워지게 된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창과 호는 구분되지 않고 하나로 붙어서 "창호"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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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ImageVGU8KE.heic 민칠식가옥



위 두 사진은 창호가 모두 닫혀있을 때가 열려 있을 때 사진입니다. 닫혀 있을 때는 크게 구분이 안되던 것이 모두 열어놓으니 확실히 창과 호가 구분이 되는 모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곳에 사시던 어느 어르신이 저 머름 위에 팔을 걸치고 밖을 바라봤을 때를 상상해 봅니다.

입식 생활을 하고 있는 저는 지금 책상의자에 앉아서 창문 너머로 해가 지는 걸 바라보면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머름 위가 아닌 책상에 팔을 걸쳐놓고 타자를 치고 있습니다. 아파트가 주 생활무대인 현재를 살고 있는 지금은 어쩌면 지금 딱 의자의 높이가 높아진 것만큼 창턱의 높이가 높아진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글 쓰는데 도움받은 책

김도경,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현암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