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 처마
지금도 종종 쓰이긴 하지만 예전에 4차원이라는 말이 유행할 때가 있었습니다. 대개 엉뚱한 사람들을 보고 4차원이라는 말을 썼지요. 4차원은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3차원에 시간이라는 개념을 더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3차원이 우리 세계가 사는 곳이라면 4차원은 우리의 세계가 아닌, 그래서 일반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독특함, 창의성, 예측 불가능성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3차원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 입체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 전통건축의 처마는 3차원을 나타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전통건축의 처마는 입체적이라는 것인데 어떤 모습일까요?? 우선 처마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처마는 지붕이 기둥 중심선 바깥으로 돌출한 부분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전통건축의 처마는 경사진 서까래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이 처마는 햇볕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빗물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처마의 길이와 각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을 겁니다. 서까래를 너무 길게 했다가 지붕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부러졌을 수도 있고, 너무 짧게 했다가 빗물이 들이쳐 흙벽이 다 망가지는 일도 있었을 겁니다. 또한 처마의 각도를 너무 얕게 해서 여름의 뜨거운 햇빛이 온통 집 안으로 들어왔을 수도 있고, 너무 깊게 하며 집을 다 가려버리는 일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친 후 우리 전통건축의 처마는 지금의 길이와 각도로 어느 정도 정형화 된 모습을 갖춥니다. 그리고 이렇게 처마가 정형화된 이유 중에 또 하나의 영향을 미친 건 바로 남중고도입니다. 남중고도는 "천체가 자오선을 통과할 때의 고도"를 말하는데 쉽게 태양이 하늘에서 가장 높게 떠 있는 높이를 말합니다. 이는 매일 정오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태양이 정남 쪽 하늘에 위치하는 순간을 뜻하며, 이 시간이 태양고도가 가장 높기 때문에 이를 남중고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남중고도는 여름과 겨울이 높이가 다릅니다.
위 이미지는 우리나라 계절별 남중고도를 나타냅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여름에는 남중고도가 높고, 겨울에는 남중고도가 낮은데 여름에 가장 높을 때의 남중고도는 대략 77도이고, 겨울에 가장 낮을 때의 남중고도는 대략 30도입니다. 이 남중고도를 우리 전통건축에 적용시키면 아래와 같습니다.
위쪽 이미지를 보시면 여름과 겨울 남중고도에 따라 햇빛이 어떻게 집 안으로 들어오는지를 이미지화한 것입니다. 즉 처마는 빗물이 들이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 이외에도 여름에는 햇빛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아주고, 겨울은 햇빛이 방 안까지 깊게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것이죠. 사진 중에 왼쪽 사진은 아주 더운 8월 어느 날 오후 3시쯤 찍은 사진입니다. 이렇게 처마로 인해 햇빛이 건물 안까지 들어오는 걸 막아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아주 추운 1월 어느 날 오후 3시쯤 찍은 사진입니다. 확실히 햇빛이 건물 깊은 곳까지 들어온 것을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이렇게 지금 처마는 구조적인 이유와, 계절에 따른 변화 등 다양한 이유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처마의 곡선이 3차원이라고 하였는데 어떤 모습일까요??
위 사진의 처마선을 보시면 어떠신가요. 점도 아니고 직선도 아닌, 입체적인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처마의 곡선은 3차원 곡선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곡선은 우리 전통건축의 모든 건물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곡선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하나의 조건이 필요한데 바로 추녀입니다. 즉 추녀가 대각선으로 길고 높게 빠져나오고, 기존 처마보다 더 앞으로 나오고, 위로 솟아 있으므로, 이 추녀의 끝선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3차원 곡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추녀가 오는 건물은 공력이 참 많이 들어갑니다. 갑자기 대각선으로 나오는 부재가 생겼고,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삼각형의 공간이 생기게 되거든요. 그것도 삐딱한 모양의 삼각형이요. 이 부분은 한 점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선자(扇子) 서까래라고 하는데,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그만큼 휘어지고 긴 나무를 구해와야 해서 재료도 더 많이 들어가게 되죠.
그렇다면 이렇게 공력도 많이 들어가고 자재도 많이 들어가는 3차원 처마를 왜 고수하였을까요? 건축의 발전에 있어서 불필요한 요소들이 제거되는 과정을 많이 거칩니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것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건축도 원래 처마가 곡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어느 시기가 되면 시공상의 간편함을 채택하면서 처마의 곡선은 사라지게 되고 직선으로 처리하던지, 아니면 양 끝에만 조금 올리는 식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이 끝까지 처마의 곡선을 고수하였고,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처마 곡선이 주는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못한 게 아닐까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전통건축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지붕의 선들이 전부 곡선을 나타내고 있거든요. 이런 곡선은 건물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지붕을 날렵하게 만들어주고,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력이 많이 들어도, 자재가 많이 들어도 이 곡선을 포기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노고 덕분에 지금 우리 전통건축의 처마는 그 어느 나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아름다운 처마 곡선을 가지게 된 것이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전쟁 직후, 절대적으로 물자와 인력이 부족한 시기에서도 3차원 곡선을 포기하지 않은 옛 선조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전통건축이 가지고 있는 지붕의 미를 한번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쓰는데 도움받은 책
김도경,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현암사,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