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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민희 Jan 28. 2022

서울 사람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로는 한 사람이 도시에 대한 인상을 정한다


다섯 살 때쯤, 서울에 있는 둘째 큰아버지 집에 간 적이 있다. 이수역 근처였다고 들었다. 아빠 형제 8남매는 1년에 한 번씩 한 집씩 돌아가며 모임을 했는데 그해에는 서울에 사는 둘째 큰아버지가 호스트였다. 형제만 8명에 배우자와 자녀까지 합치면 족히 스무 명은 됐을 텐데 집에서 모였다. 1990년대 초반, 아파트라는 신식 주거 환경에 옛 풍습이 뒤엉켜 혼재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모임은 왁자했다. 스무 명이나 모일만큼 큰 집은 아니었지만 복닥거리며 모여서 1박 2일을 보냈다. 강렬하게 남은 기억 두 가지는 서울 마트 풍경과 둘째 큰어머니의 모습이다.


우선 마트. 분명히 우리 동네에도 마트는 있었는데 서울 마트는 달랐다. 엄청나게 큰 규모에 우리 동네에서는 본 적 없는 온갖 물건이 어린 나를 유혹했다. 과자도 음료수도 우리 동네와는 다른 모양의 것들이 즐비했다. 서울이 아니라 미국 마트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동네 마트만 다니다가 이마트나 롯데마트를 처음 갔을 때, 또는 대형마트나 몇 번 다녔는데 처음으로 코스트코에 갔을 때와 비슷한 감상이라 할 수 있겠다. 어른들 없이 사촌 언니 오빠 따라서 간 마트에서 내가 살 수 있는 건 없었지만, 충격적으로 좋았다. 이런 게 서울 문명이구나 싶었다.


마트에서 서울의 화려함을 맛봤다면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서울의 차가움을 느꼈다. 오랜만에 형제들과 모임에 무리한 아빠는 당시 만취했다. 만만하지 않은 밤을 보냈던 인상만 남아 있다. 다음날 아빠는 혼자 집에 갔고, 엄마가 나와 동생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이 셋을 혼자 챙길 생각에 앞이 깜깜해진 엄마는 큰엄마에게 역까지만 바래다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분은 부엌 정리를 하느라 바쁘다며 배웅도 제대로 안 했다. 내 기억에 싱크대 앞에 서서 바쁘게 움직이는, 파마를 한 긴 머리에 알이 엄청 큰 안경을 쓴 그분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차가웠던 그 분위기와 아이 셋을 데리고 종종 대는 젊은 엄마. 그때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는 꼭 서러움을 토로한다. 그때마다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다가 "엄마, 분노해야 할 대상은 그분이 아니야"하고 말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1박 2일 동안 큰 손님을 치른 그분의 노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추측건대 그분은 1분 1초라도 빨리 모두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내 공간이 평화로워지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에너지는 진작에 고갈이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매정했던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배려를 이미 다 했던 거였다. 그 이후로 둘째 큰어머니는 뵌 기억이 없다. 어린 시절 서울 마트의 신세계를 보여준 사촌 언니를 통해 잘 지내신다는 말만 한 번 들었을 뿐이다.


때로는 한 사람이 도시에 대한 인상을 정한다. 다정한 현지인의 도움을 받은 여행지는 오랫동안 좋게 기억되고, 소매치기를 당한 도시라면 정반대일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꽤 오랫동안 그분에 대한 인상으로 서울을 생각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온통 무심하고 자기만 아는 줄 알았다. 세월이 흐르며 내가 갖고 있는 단편적인 인상 뒤에 있었을 다양한 사정과 그분의 수고를 겨우 떠올리게 됐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동안 막연하게 그분에 대해 갖고 있던 편견을 버려야겠다. 그분은 차갑고 쌀쌀맞은 서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자기감정에 당당하고 솔직했던 서울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제는 환갑을 넘어 고희를 바라보실 그분이 서울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사시기를 바란다.





Photo by Ryoji Iwat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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