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악몽 같은 기억과 불편한 점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서울에는 은근히 골목마다 오래된 시장이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마트에 치여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리거나 있더라도 파리만 날리는 줄 알았는데 재래시장은 나름의 경쟁력을 갖고 여전히 잘 운영되며, 젊은 고객의 유입도 활발하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서울의 시장 중 하나로 광장시장을 빼놓을 수 없다.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은 워낙 유명하고, 가족들과 함께 구경을 한 적도 있어 안산에 사는 나에게도 익숙했다. 그런데 광장시장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곳이었다. 그런데 한 번 그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는 남대문, 동대문보다 더욱 자주 찾는 공간이 됐다.
난생처음 광장시장을 찾은 건 2006년 여름이었다. 학교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만 오면 될 만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였다. 청계천 광교와 장교 사이에 위치해 광장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시장은 1904년 운영을 시작했다. 어언 100년의 역사를 지닌 시장에 들어서자 낡고 칙칙한 분위기 속에 활기가 가득했다. 포목점을 지나자 젓갈과 장아찌를 파는 반찬가게가 나왔다. 아무리 봐도 젊은 사람은 우리 밖에 없는 듯한 시장 골목을 계속 걷다 보니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름에 튀기듯 구워지고 있는 녹두전이었다. 특별히 전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안 먹고 버틸 수 없는 냄새와 모양에 이끌려 한 개를 주문했다. 단 돈 4000원에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놀랍게도 광장시장 녹두전은 여전히 가격이 1원도 오르지 않았다. 그 녹두전이 5000원이 되는 날이 오면, 어떤 한 시대가 끝났다는 기분이 들 것만 같다. 3000원을 주고 시킨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며 서울 시내에 이렇게 훌륭한 장소가 있음에 감사했다. 비록 환경은 허름하고, 음식의 위생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편안한 분위기가 주는 매력에 푹 빠져 나는 이후로도 광장시장을 자주 찾았다.
광장시장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 중 하나로 육회를 빼놓을 수 없다. 2009년 겨울의 초입, 광장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육회 식당인 자매집을 찾았다. 그때까지 밖에서 육회를 사 먹어 본 적도 없고, 대학생에게 육회는 비싼 음식이라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 그런데 자매집에서는 10,000원이면 큰 접시를 가득 채운 때깔 좋은 육회를 푸짐하게 맛볼 수 있었다. 육회 정 가운데 얌전하게 올라간 계란 노른자를 톡 터트려 육회와 그 아래 숨어 있던 배와 섞어 기름장을 찍어 먹으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거기에 기본으로 내주는 소고기 뭇국 맛은 또 얼마나 좋은지. 소주를 한 병 시키지 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간과 천엽을 주문해 먹는 어른들도 많았다. 먹어보고는 싶지만 본격적으로 한 접시를 주문하기에는 겁이 났던 터라 종업원에게 아주 조금만 맛볼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국그릇으로 한 사발을 담아 내줬다. 간과 천엽을 그때 처음 먹어 봤던가? 간의 비릿한 피 냄새와 천엽의 꼬들꼬들한 질감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시장의 정에 감탄했다. 지금 같으면 그런 요청은 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터무니없는 부탁을 들어주지도 않을 것 같지만, 2009년의 광장시장에는 그런 따뜻함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자매집은 이후로도 장사가 잘되어 3호점까지 냈다. 얼마 전에 가보자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리모델링을 한 건 물론이고, 젊은 사람이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는지 브랜딩까지 제대로 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기억 속 정감 있는 모습이 사라진 건 아쉬웠지만 시대와 발맞춰 발전하고 있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광장시장은 원래도 외국인 여행자가 많이 방문하는 곳이었지만, 2010년 중후반 이후로는 정말로 위세가 급격히 높아졌음을 갈 때마다 몸소 느꼈다. 주말이면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시장을 가득 매웠다. 두려움과 호기심을 가득 안고 음식을 주문하는 사람부터 이 정도는 익숙하다는 듯 떡볶이와 순대를 먹는 사람까지 다양한 외국인이 시장의 표정을 다채롭게 했다. 외국의 매체에 광장시장이 소개되는 일도 늘었다. 아시아의 길거리 음식과 셰프를 소개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길 위의 셰프들’에 나온 광장시장 고향칼국수는 영상이 공개된 이후 간판에 넷플릭스 로고와 영상 캡처 사진을 붙인 채 영업을 하고 있다. 칼국수와 만두가 주를 이루는 그 골목에서 언제나 손님이 가장 많다. 칼국수를 팔아 아들을 호텔 셰프로 키웠다는 사장님은 외국인에게 “웨어 아유 프롬, 오 멕시코, 올라!”하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넨다. 손으로는 칼국수 면을 자르면서 눈으로는 늘 주위를 살핀다. 친절한 분위기 속에 따뜻한 칼국수를 한 그릇 먹다 보면 몸과 마음이 함께 풍족해져 시장에 찾는 이유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광장시장은 불편한 점도 많다. 여전히 많은 가게가 카드 사용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치명적이다.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천 원짜리 만 원짜리를 카드로 사냐”고 불만을 토로할지 몰라도 현금은 한 장도 들고 다니지 않는 젊은이는 광장시장에 갈 때마다 돈을 찾아야 한다는 게 늘 불편하다. 이는 비단 지불 수단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라 탈세를 위해 현금을 선호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좋지 않다. 한 번은 카드 사용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그렇다길래 앉아서 음식을 먹었는데, 다 먹고 가려니 자연스럽게 계좌번호를 건넸다. 음식 값은 잘 치렀지만 마음에는 찜찜함이 남았다.
그런가 하면 위생 문제도 시장을 즐기는 데 걸림돌이 된다. 퇴근을 하며 광장시장을 찾은 어느 여름밤, 회 한 접시에 맥주를 마시고 싶어 여러 횟감이 보이는 가게에 앉았다. 점포를 운영하는 할머니 사장님께 회를 한 접시 주문하자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곧장 주문을 취소하고 돌아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한 여름에 횟감을 맨 손으로 만지는 걸 직관하자 입맛이 뚝 떨어진 것이었다. 할머니의 모든 움직임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연어나 광어 따위를 손으로 잡고, 물에 한참 담가놓았던 칼로 생선을 썰었다. 고급 횟집에서도 맨 손으로 조리를 하고, 나도 음식 할 때 딱히 장갑을 끼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며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눈앞에서 너무 생생하게 썩 위생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리에 앉자마자 내준 채소도 의아하기 짝이 없었다. 사장님은 나에게 회를 내준 후 다른 손님이 남기고 간 흔적을 정리하면서 남은 채소를 물에 담갔다가 꺼내 물기를 탈탈 털더니 새까만 손때가 잔뜩 끼 아이스박스에 넣었다. 나한테 준 채소도 저기에서 꺼낸 거였는데... 여름밤의 여유를 즐기고 싶은 마음은 싹 사라져 맥주도 시키지 않고, 회만 꾸역꾸역 먹었다. 사장님은 맛있냐고 묻더니 오늘 연어도 좋다며 접시 위에 연어를 손으로 툭툭 쳤다. 사장님, 제발... 억지로 회를 먹은 이후로 며칠 동안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나의 위장은 기특하게도 광장시장 서바이벌 게임에서 승리했다.
몇몇 악몽 같은 기억과 불편한 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광장시장을 찾는다. 퇴근길 날이 좋아 걷고 싶을 때, 남편과 주말에 데이트를 즐길 때, 처음부터 광장시장을 생각한 게 아닌 데도 걷다 보면 늘 광장시장에 가 있다. 그 넓은 시장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가게가 훨씬 많고,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많다는 사실이 설렌다. 서울의 오래된 공간이 하나둘 사라질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광장시장만큼은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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