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인의 한 맺힌 성토
‘경기도, 인천러들이 열 받는 약속 장소’라는 이름의 짤이 있다. 김포, 고양, 파주, 일산에 산다면 “강남, 건대? 담에 보자.” 인천, 부천, 시흥, 광명, 안양에 사는 이에게 대학로에서 만나자고 한다면? 바로 절교. 성남, 수원, 용인 사람에게 홍대는 약속 취소 사유이고 의정부, 남양주인에게 강남은? “밥은 네가 사는 걸로.” 누가 만든 짤인지 몰라도 경기도와 서울 지리, 지하철 노선도까지 모두 잘 파악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경기도인의 웃음과 눈물 섞인 댓글을 달며 공감을 표했다.
수도권이라는 단어로 묶기에 서울과 경기도는 굉장히 넓다. 서울만 해도 끝에서 끝까지 종단 또는 횡단을 하려면 한 시간 반 가까이 걸리는 마당에 경기도에서 서울에 가는 길이 멀고 험난한 건 당연하다. 광명이나 과천과 같이 생활권이 서울에 포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경기도인 대부분이 서울에 갈 때 1시간 이상을 쓴다. 내가 30년을 산 안산은 오이도역이 개통하기 전인 2000년까지 4호선 지하철의 종착역이었다. 그만큼 서울과 물리적인 거리 자체가 상당했다. 서울에 사람에게는 낯설 지하철 종점 지역 특유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몇 개 역을 지나도록 객실은 텅 비어있고, 간격이 정말 먼 역과 역 사이에는 차창으로 논밭이 보인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가야 서울에 닿을 수 있다.
학교와 직장이 모두 서울에 있었으니 나도 그 생활을 아주 오래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약속을 잡을 때 장소는 당연히 서울이었다. 그게 너무 당연해서 안산에서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건 생각도 못해봤다. 서울에 가는 건 늘 좋은 일이었지만, 약속 시간 2시간 전에 집을 나서야 할 때나 약속 끝나고 헤어져서 한참 가고 있는데 벌써 집에 도착해 샤워까지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친구 문자를 받으면 서러움이 몰려왔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왔다 갔다 하는데 인생을 허비하고 있을까. 억울해하면서도 서울에 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의문이 생겼다. “안산 사는 게 무슨 죄야? 왜 맨날 서울에서만 만나?” 그동안 길에 버린 시간과 돈, 친구들을 위해 들인 정성이 떠오르면서 이 관계가 얼마나 균형이 맞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고, 급기야 내가 사는 동네로 한 번 놀러 오겠다고 말하지 않는 친구가 미워지는 것이다. 억울함이 엉뚱한 순간에 폭발하기 전에 나는 몇 번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 안산에 오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친구들은 내가 들였던 정성을 그대로 갚기라도 하듯 모두 한 번 이상 안산에 와줬다. 비록 내가 10번(아니 100번) 가고 그들은 한 번 왔을지언정, 츤데레 경기도인은 먼 길 행차해준 친구들에게 큰 감동을 받았다. 그 한 번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말이다.
나에게도 열 받는 서울의 약속 장소가 있었다. 의외로 4호선 지하철을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는 대학로는 괜찮았다. 톡 튀게 거부하고 싶은 곳은 광진구였다. 안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사당까지 간 다음 2호선을 갈아타고도 30분을 더 가야 하는 먼 광진구. 이승환 뮤직비디오 촬영 중 귀신이 찍힌 광나루역이 있다는 광진구(나중에 밝혀진 귀신의 정체는 기관사의 지인). 대학에 가기 전에는 그런 이름의 구가 서울에 있는 줄도 몰랐는데 학교 동기 M이 사는 동네라 광진구에 대해 처음 알았다. 통성명을 하며 사는 동네를 이야기할 때 M이 “강변에 살아요”라고 하는 걸 처음 듣고 일반적인 강변의 단어 뜻이 먼저 떠올랐던 나는 ‘서울에 강변이 한두 군데인가?’ 생각했는데 강변역이 있는 강변을 뜻하는 거였다. M과의 인연으로 몇 번 강변에 가면서 동네는 익숙해졌지만 안산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놀라울 만큼 멀었다. 애초에 안산과 강변은 고속버스를 운행할 수준으로 멀었는데 그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다녔으니. 지금 돌이켜 보면 20대 때는 친구를 위해 정말 뭐든 할 수 있었구나 싶다.
또 한 곳은 역시 광진구에 위치하는 건대다. 안산 사람이 건대에 도달하기까지는 장애물이 많다. 건대에 가느니 강남이나 홍대에 가면 되고, 그도 아니면 하다못해 신천이라도 있다. 여느 번화가와 다른 건대만의 특성이랄 것도 없어서 찾을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런 내가 건대에 그렇게 자주 가게 될 줄이야. 처음 만날 당시 남양주에서 지내던 지금의 남편과 명동에서 일하는 내가 만나기 적당한 중간 장소가 건대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만남 모두 건대였다. 몇 번째 만났을 때였는지 몰라도 집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이야기하자 깜짝 놀라더니 다음에는 본인이 안산에 오겠다고 말했다. 그 주 금요일에 남편은 남양주에서 안산까지 차를 끌고 왔다. 아마 지하철을 타고 오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을지 모른다. 사는 지역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인한 후에도 호감은 커졌고, 우리는 사귀기로 했다.
가끔 교통의 발달이 인류에게 좋은 일인가 비극인가 생각한다. 거리의 경계를 넘어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외국에도 갈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매일매일 4시간씩 거리에서 보내다 보면 결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안산과 서울을 오가며 소비한 에너지와 그렇게 힘을 들이면서도 열심히 서울로 향하던 발걸음을 떠올리면 숙연해진다. 서울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경기도인의 삶은 하루하루 고단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서울 사람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순간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막차에서 내리고, 서울 사람이 약속 장소에 나가기 위해 입을 옷을 고르는 순간 경기도인은 이미 절반만큼 가는 중이다. 다정한 서울인이라면 경기도인 친구에게 늘 서울까지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가끔은 그들이 사는 곳에서 만나기를. 서울로 향하는 경기도인의 발걸음에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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