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배신감은 어디에서 오는가
밤에 또 전화가 왔다. 친한 후배 A였고, 무려 3주째였다. A가 어떤 이에게 느낀 배신감을 토로하리라 예감했고, 역시나였다. 오늘도 A는 본인이 신뢰의 마음을 줬다 배신당했다고 느낀 몇 살 어린 후배에 대해 얘기했다. 누가 보면 A가 사랑하다 헤어진 사이라 이렇게 질척거리나 싶을 만큼의 집착이었다.
"니가 그 후배에게 상처받은 건 알겠는데.. 그냥 솔직히 마음이 상했다고 말해보지 그래?"
"그럼 꼰대 같잖아요. 물론 꼰대긴 하지만,그래도..."
"너 꼰대 맞는데.. 그냥 솔직하게 물어보고 신경을 아예 끄든 말든 결론을 내라고!!"
몇 년이 지났지만, 나도 여태 또렷이 기억한다. A는 그 후배에 대해서 유난스럽게 늘 칭찬을 하곤 했다. 둘은 몇 개월프로젝트를 같이 했을 뿐이고, 사적으로 그렇게까지 친밀해 보이진 않았다. 그 후배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예의바름에 꽂혀 있었던 듯했다. 그리고 딱 그 지점에서, A는 혼자 상처를 받았다.
"그 후배가 너에게 신뢰와 호의를 요구하지 않았잖아. 네가 그냥 줘놓고 왜 배신감을 느끼는 거야?"
"맞아요. 그 아이에게 저는 아무도 아니었어요. 그냥 '아는 사이'였을 뿐이더라고요. 딱 그거더라고요"
언제나 남의 사연에 얻는 말은 쉬운 법이다. 내가 애정하고 신뢰하는 사람이 알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다거나, 내가 이렇게나 마음을 썼는데 되돌아오는 것이 내 마음과 다르다면 그 허탈감은 말해 뭐 할까. 큰 사건이 아니라 미묘한 말과 행동이었다면, 오히려 망설임이라는 심리적 짐이 더 따라붙기 마련이다.
그냥 그런 날이 있다. 누군가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날. 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갑자기 뺨을 맞은 것 같은 때. 그렇다고 마음을 준 것이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마음을 주고받지 않으면 살아간다는 의미도 그만큼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걸.
얼마 전에 읽은 <Crying in H mart>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누구를 얼마나 사랑하던지 간에 10% 정도는 아껴두라는 말.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인 엄마가 딸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래야 너무 뒤얽히지 않고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질척한 관계가 아니라 공기가 통하는 건강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직장 생활에서도, 부부사이에서도, 그 어떤 관계에도 마찬가지리라.
Some of the earliest memories I can recall are of my mother instructing me to always "save ten percent of yourself." What she meant was that, no matter how much you thought you loved someone, or thought they loved you, you never gave all of yourself. Save 10 percent, always, so there was something to fall back on.
-<Crying in H mart>
그 별 것 아닌 감정에 휘말려 있느니, 약간의 거리를 두자.
어떤 사람이든 그 다양한 모습을 포용할 수 있도록 틈을 남겨 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