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좋아서, 퇴사하기로 했다
나도 내가 무모하다고는 생각했다.
나이 마흔에, 아무 계획도 없이, 일단 퇴사하고 보기로 했으니 말이다.
정말 이래도 될까 싶다가도, 무모해지는데 나이를 따질 필요가 무엇인가 싶었다.
이제 생활비는 어쩌나 싶다가도, 딸린 남편과 자식이 없는 덕분에 그래도 어떻게든 내 한 몸은 내가 버텨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외롭고 처량하게 지내는 것은 아닌가 싶다가도, 오히려 그 커다란 여백의 시간이 내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와 에너지를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은 짧고, 날은 이렇게나 좋다.
초여름의 싱그러운 녹음이 빛나고 있고, 이 계절은 또 한 번 빛의 속도로 나를 비켜 지나가고 있으니까.
늘 그렇듯 회사에서 쳇바퀴를 돌리고 있기에는, 날이 너무 좋기에 한 번쯤은 계절을 온전히 느껴야 하니까, 그러니 나는 무모해져도 좋겠다고, 지금이 무모해지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지난 겨울 나는 아빠와의 마지막 여행으로 일주일 가량을 호스피스에서 머물렀다. 아빠의 시간이 하루 하루, 아니 시간 단위로 줄어들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지만, 그렇기에 더 감사한 마음으로 지금의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야 한다고도 다짐했던 날들이었다. 날이 좋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지, 그래서 이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는 것, 이 생각이 나를 멈춰 세웠다.
그렇게 시답잖은, 하지만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지나갔다.
내 안에서의 결정적 순간이 찾아 오고 난 후, 오늘 나는 그 결과물로 마흔 방학의 첫 날을 만끽하고 있다.
백수 첫 날은 두려움보다는 설레임, 무료함보다는 여유로움이 크긴 한데, 이런 기분은 과연 몇 주 정도의 생명력을 가진 것일까. 곧 또 다른 감정과 생활고가 나를 감싸긴 하겠지만, 우선 현재를 즐겨보련다. 앞으로 이 방학이 과연 나를 어디로 이끌어 줄 지, 그 과정에서 나는 얼마나 더 괜찮은 사람이 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무모한 결정, 그 이후.
이 공간은 '그 이후'의 이야기가 주를 이룰 예정이다. 열심히 구직 사이트를 맴돌며 재취업에 몰두 할지, 새로운 영역에서 색다른 시도를 해 나갈지, 또는 한바탕 길을 헤매고 주저 앉아 있을지, 그 과정의 이야기를 써 볼 생각이다. 어쩌다 시간 부자의 길로 들어선 전직 회사원의 새로운 세상이랄까.
사람들을 더 만나고,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느긋하게 낮잠을 자고,
영어 공부를 하고,
쉼없이 30분을 달려보고,
스케이트보드와 골프를 배워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삼시세끼 해 먹어보고,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자연 속에서 캠핑을 하고,
유튜브 영상을 찍어 편집하고,
프리랜서로 일의 또 다른 형태를 경험해 보고,
누군가의도움에 선뜻 손을 내밀어보고.
뭐, 앞으로 다가올 이런 이야기들.
이야기를 쓰기위해서라도 꼭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많은 것들을 해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