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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계절 Jun 15. 2021

떠나는 사람들은 다정함을 남겼다, 퇴사자의 선물

동료들과의 이별, 나도 다정한 작별 인사를 건넬 거야

이상했다. 이상하게도 내가 다닌 회사에서는 대게 퇴사자들이 정성스러운 선물을 남기고 가곤 했다.

그것도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성향과 취향을 맞춘 선물.


신기했다. 이제 그냥 떠나면 되는 시간인데, 어떤 감정으로 이런 선물을 준비했을까 싶었다. 남은 사람들이 준비하는 선물이야 돈을 모으고 생각을 모으면 되는 일이었지만, 떠나가는 사람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챙기는 선물은 그 마음의 깊이가 다를뿐더러 경제적으로도 신경이 쓰는 일이니까. 현재 진행형이 아닌, 이제 곧 곁을 떠날, 전 직장 동료를 위해 돈과 마음을 쓴다는 건 정말 깊은 마음을 쓰는 일일 테니까.


그렇지만, 그 간의 나는 별생각 없이, 주길래 덥석 받았더랬다.

입사에서부터 퇴사까지 함께 일했던 A는 그 당시 내가 가장 갖고 싶어 했던 에어 팟을, 일하면서 함께 찍은 사진을 출력해 포토 카드로 전해줬었고, 다른 팀의 팀장으로 급격하게 친해졌던 B는, 그 당시 요리를 하겠다고 설치던 나를 발견하곤, 그린 컬러의 사랑스러운 에어프라이어를 선물로 주고 떠났다. 써 보니 편하고 좋다고.(*사실 긴가민가 해서 카톡으로 물어봤다. 나에게 무엇을 주고 떠났냐고. 내가 참 무심한 사람이긴 했다.) 귀염둥이 후배 C는 발랄한 컬러와 아기자기한 가족 일러스트로 'Best Friends'라고 써진 일러스트 액자를 주고 전해주었고, (*아직도 나의 방 침대 한편에 이 액자가 서 있다) 섬세한 후배 D는 내가 현재 빠져있는 캠핑 취향을 고려해, 작고 귀여운 빨간색 베어본즈 랜턴을 전해주었다. 눈부신 나의 계절이라는 노트와 함께. (*참고로 나의 계절은 나의 유튜브 채널명이다). 한 어카운트를 여러 해 함께 했던 후배 E는 싱그러운 그린 컬러의 스탠리 머그컵 세트를 건네며 나보다 한 달 먼저 이별을 고했다. 이 외에도 캠핑하면서 유용하게 쓸 수 있을만한 휴지걸이를 준다거나, 멋스러운 모나미 볼펜을 돌린다거나, 사람에게 작은 유리병에 든 사탕이나, 유기농 생활용품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이 회사의 퇴사자들은(*물론 일부 나와 친분이 있던 퇴사자 들이었겠지만) 어떻게 이렇게도 기꺼이도 마음을 썼을까. 이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의 묘한 매력인지, 어떤 감정의 부산물인지 모르겠으나, 퇴사한 내가 지금 유추해보건대, 아마도 같이 일하고 감정을 교류했던 과거의 밀도 높은 시간에 대한 찬양이자 따듯한 다정함과 고마움이었으리라.




그러고 나서, 이제, 내 차례가 왔다. 내 퇴사를 하는 날.

회사에 퇴사를 고하고, 퇴사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준비를 하면서 내가 부딪친 가장 힘든 일. 사실 바로 이 선물이었다. 우리 팀의 사랑스러운 후배들, 함께 일 했던 다정한 선후배들에게 나도 예전의 퇴사자들이 그러했 듯 선물을 주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누구에게까지 줄 것이며, 어떤 선물로 마음을 표현할 것인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선물을 해야 하나?'의 답변은 너무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당연하지로 이어졌다. 상당히 무심한 나 조차도 퇴사를 앞두니,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과 보낸 시간과 관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고, 마음을 표현한다는 건, 함께 한 시간에 대한 다정한 예의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나의 퇴사, 이별 선물 구입의 가이드라인은 대략 이러했다.

1.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를 택할 것

2. 매 선물마다 감사 인사 엽서는 동봉할 것.

3. 동료의 관심사/취향을 따르거나,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이거나, 또는 받으면 기분 좋아지는 선물을 고를 것.


그리고는, 다시 온라인 세상을 정처 없이 떠돌았다.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누군가의 취향에 맞춰 선물을 준비한다는 것, 어려운 일일 줄 알았으나,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셀렉트 샵 29cm, 키니버니포니, 오브젝트, TWL 등이 큰 도움이 되었다)


혹시나 여러 가지의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사람들을 위해 아래 선물 목록을 정리해봤다. 신기하게 선물을 고르다 보니, 떠나가는 나도 마음이 한결 더 가뿐해지는 느낌이었다.


[다이노탱] Apple Mini Pouch,   출처: 오브젝트 홈페이지

처음이니까, 시작이니까, 귀여우니까, 다이노탱

함께 일한 지 4개월쯤 되었을까. 사실 인턴 면접에서부터, '엇 이 친구다. 대단한걸'이라고 생각했던 인턴 A. 귀여움은 스트레스를 녹여주기 마련이니, 익숙지 않은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이 사과 주머니에 넣어버리길. 에어 팟 주머니로도, 동전주머니로도, 아니면 뭐라도 잘 쓰길 :)



[hap] bauhaus trio, 출처: 29cm 홈페이지

모양도 색도 제각각, 오브제가 되는 향초

이제 막 들어온 신입사원 B. 당연히 모든 게 처음이고 실수하기 마련이니 주눅 들지 말라고 컬러감도 모양도 예쁜 향초를 샀다. 너무 긴장하지도 실수했다고 자책하지 말고 자기만의 컬러와 모양을 찾아나가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리고 중요한 일, 행복한 일 있을 때마다 하나씩 태우라고.



[스케이프앤드스코프] 스톤 귀걸이

본연의 모습만으로도 아름다운 스톤 귀걸이

C는 트렌디하다.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고 제로 웨이스트에 관심이 많다. 내면의 알찬 빛이 가득한 C에게는 스케이프앤드스코프의 EARTH MADE 스톤 귀걸이를 골랐다. 자연 그대로의 돌멩이로 만들었다는 스톤 귀걸이와,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선물합니다' 이 브랜드의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사람.



[ontheblue] 버튼 카드 케이스, 출처: 홈페이지

무심한 듯, 사랑스러운 카드 케이스

D는 유난히 잘 웃고 경쾌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낯가림이 있는 듯하면서도 어느덧 경계를 풀고 베시시- 웃으며 무덤덤하게 말할 때가 가장 매력적. 이 친구에게는 싱그러운 그린카드 지갑을 선물했다. 귀엽고, 유쾌하고, 매력적이니, 그대와 딱이네. (*이 선물은 다른 후배의 추천도 한몫했다. 땡스!)



[오이뮤] 인센스 스틱- Summer

풋풋한 여름의 향, 진지한 표정의 인센스 홀더

처음에는 너무 당황했다. E는 나랑 너무 달라서. 예를 들면 매사 진지하고, 사람들의 말을 경청했으며, 특히 선배의 말은 충실히 행하고자 하는 사람. 신혼집에 둘이 처음으로 맞는 여름에, 이 계절의 향이 가득하길 바라며, 오미뉴의 여름 인센스를 샀다. 그리고 나날이라는 도자기 브랜드에서 뭔가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는 얼굴 모양의 인센스 홀더도!



[투카타] 거북이 small 키링

건강을 기원하는 십장생, 거북이 키링

최근 들어서 특히나 더 고마움을 느꼈던 F.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와 식사 한 끼가 큰 고마움으로 느껴져 장생을 기원하는 거북이 키링을 샀다. 작은 사이즈지만 보통의 키링 크기를 생각하면 오산. 단정하게 천으로 포장되어 오는 것도, 선물하는 내게도 너무 마음에 들었던 포인트.



[아리큐르] 담금주

특별한 술로 순간을 즐기길, 담금주

술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 순간의 분위기, 감정, 사람들을 한 목음씩 음미할 수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이 맥락에 딱 잘 어울리는 두 사람, G와 H에게는 담금주를 한 병씩 남겼다. 재료에 따라 또 다른 맛을 낼 텐데, 한 번쯤 특별한 맛과 분위기에 취해보길.





이게 끝은 아니었는데, 이 외에도 I와 J에게는 에이솝 제품을, K에는 똑 닮은 다이노탱 필통을 주고 왔다.

(*사실, 글에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나는 내가 준 것보다 더 큰 선물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받았다. 너무 감사한 마음)




와,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사람을 참으로 많이 얻었구나.

선물을 포장하고 엽서를 쓰다 보니, 내가 그들에게 받은 많은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지, 그래, 그 당연함이 없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시간 속에 들어가 있다 나온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난 참 특별한 회사를 다녔구나 싶다.


남녀 간의 이별에 '예의'가 필요하다면, 한 식구로 나의 평일 대부분을 함께 보낸 사람들과의 이별에는 '다정한 제스처'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돌고 돌아 또 만나겠지만, 이제 매일 아침 인사하고, 밥을 먹고, 사소한 일에 함께 흥분하고 서운해했던 사소한 일상의 순간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머물겠지.


참 잘했다.

내 인생의 상당한 부분에 기꺼이 함께 마음을 내 준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고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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