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의 오지랖, 나의 오지랖
"이렇게 싹싹한데, 아직도 결혼을 안 했어요?"
"왜 안 했어요?"
"내가 기도해줄게요. 끌리는 사람 만나라고"
"아, 네? 아 네네. 네. 네."
50대 후반의 아저씨가 거침없이 말했다. 지난주와 이번 주 부동산 매매로 딱 두 번 만난 사이. 갑작스러운 후구 조사가 시작되었다. 학교는 어디 나왔으며, 전공은 뭐고, 현재는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 회사 이름은 뭔지, 회사에서 무슨 업무를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누구도 한두 번의 만남에서 묻지 않을 법한 물음을 너무 쉽게 훅훅 던지셨더랬다.
대체 누가 이런 오지랖을 허하였던가.
어쩌냐. 정말 안타까운 마음으로 얘기하는 것일 텐데. 허허 웃으며 적당히 대답하고, 그렇게 대화가 끊어지고 이어지고를 반복하다가, 매매하는 아파트 키를 넘기는 시간이 됐다. 집에 들러서 마지막으로 아빠가 머물던 공간과 가구들을 잠시 둘러보며 작별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하는데, 오지랖 아저씨와 함께 있던 60대 매수인 아저씨가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이거 서울 올라가면서 밥이라도 사 먹어요"
5만 원이었다.
손사래를 쳤지만, 어르신이 주시는 돈을 끝까지 뿌리치기도 어려워 받아 들고, 맛있는 거 잘 사 먹고 올라가겠다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돈을 받았다. 아파트 매도인과 매수인일 뿐인데, 왜 밥 사 먹을 돈을 주는 걸까. 나는 이해하기 힘든, 무언가 옛정인 것 같은 느낌.
어르신들의 오지랖을 이해하게 된 것은 사실, 나도 모르게 꼰대로 오지랖을 부리고 있음을 깨달아서인지도 모른다.
이번 주에 만난 30대 중반의 기자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느덧 대화가 꼰대스럽게 흘러갔다. 스타트업의 요즘 아이들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있던 때였나.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본인이 하는 직무의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는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저는 그런 사람들 보면 걱정이 돼요. 계속 커리어를 이어나가야 할 텐데 어쩌려고 저러지"
"전 그냥 속으로 생각하죠 '너도 나중에 나이가 들면 알게 될 거다'"
삶의 경험이 쌓이면서, 우리는 각자의 오지랖을 넓혀나가는 걸까.
나이가 어리든 경험이 없든 각자의 몫을 해나가고 있을 텐데, '먼저' 경험해 봤다고 해서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단언할 수 있는 걸까.
그나마 옛 어르신의 오지랖은 '정'이라도 묻어있지.
나의 오지랖은 뭐에 쓰려나.
누구나 각자의 속도로 본인의 인생을 지휘하며 산다.
어떤 단계에 머물고 있든, 어떤 실수를 하든, 언제 깨닫게 되든, 혹은 이를 바탕으로 더 큰 성장을 하든, 각자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교감하는 게 필요하겠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재단하고 훈수를 둘 순 없지만, 그래도 인생을 살면서 나를 걱정하는 누군가의 접점을 만들어가는 건은 또 그대로의 의미가 있는 걸 거다.
누가 우리 인생의 이런 오지랖을 허했나.
그런데 그 오지랖도 삶의 지혜 중 하나고, 정이라고.
요즘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